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방식이다. 전세는 세입자가 주거서비스공간을 빌리는 대가로 보증금을 지불하고, 보증금을 받은 집주인은 집을 제공하는 사금융 제도다. 그런데 매매는 현재와 미래 등 전체 구간의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지만 전세는 오로지 현재의 수급만을 반영한다. 전세는 근본적으로 미래의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국지적 수요와 공급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세는 단기적으로 수요를 조절하기가 어려운 게 특징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단기약발은 대체적으로 ‘수요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다. 과거 참여정부 당시 투기억제책을 내놓았을 때 매매시장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자본이득을 염두에 두는 매매의 경우 미래에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 현 시점에서 수요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거주 수요인 전세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집부자가 보유한 주택수는 1083채나 되지만 전세는 아무리 부자라도 2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전세는 투기적 수요가 없는 것이다. 전세는 당장 살아야 하는 삶의 공간이자 사용가치 측면이 강하다. 미래에 전세 공급이 아무리 많이 된다고 하더라도 소비 시기를 뒤로 미룰 수 없다. 그래서 전세는 마치 김치나 라면, 쌀처럼 생필품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3개월 뒤에 내가 큰 부자가 된다고 해도 당장 굶고 살 수 없는 것처럼 미래 전세가격 하락을 예상해도 지금 길바닥에 텐트치고 잘 수 없는 노릇이다.
아파트 입주단지를 보면 전세시장과 매매시장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매매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 반면 전세가격은 주변시세의 반 토막 수준으로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기간에 한꺼번에 입주하는 신규 입주물량은 짧은 기간에 스톡(stock)을 늘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전세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입주량이 몰리는 지역에서는 입주초기에 전세가격이 급락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는 등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최근 시장에서 전세가 자꾸 사라지고 반전세나 월세로 대체되고 있다. 세입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주거비용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제도는 자산 축적 기능이 없다. 월세 확산은 무주택서민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격이다. 최근 전세난에 따른 월세 확산 소식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