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의 부동산 레이더]전세는 생필품이다

  • 등록 2011-08-22 오후 12:21:00

    수정 2011-08-22 오후 12:21:00

[이데일리 박원갑 칼럼니스트] 정부가 올들어 세차례에 걸쳐 전세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연거푸 내놓은 적은 많았지만 요즘처럼 전세대책 발표가 잦았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만큼 전세시장이 안정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잇따른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세시장 불안이 장기화면서 세입자들이 심각한 ‘전세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대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은 전세시장의 특성도 원인이 있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방식이다. 전세는 세입자가 주거서비스공간을 빌리는 대가로 보증금을 지불하고, 보증금을 받은 집주인은 집을 제공하는 사금융 제도다. 그런데 매매는 현재와 미래 등 전체 구간의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지만 전세는 오로지 현재의 수급만을 반영한다. 전세는 근본적으로 미래의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국지적 수요와 공급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세는 단기적으로 수요를 조절하기가 어려운 게 특징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단기약발은 대체적으로 ‘수요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다. 과거 참여정부 당시 투기억제책을 내놓았을 때 매매시장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자본이득을 염두에 두는 매매의 경우 미래에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 현 시점에서 수요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거주 수요인 전세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집부자가 보유한 주택수는 1083채나 되지만 전세는 아무리 부자라도 2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전세는 투기적 수요가 없는 것이다. 전세는 당장 살아야 하는 삶의 공간이자 사용가치 측면이 강하다. 미래에 전세 공급이 아무리 많이 된다고 하더라도 소비 시기를 뒤로 미룰 수 없다. 그래서 전세는 마치 김치나 라면, 쌀처럼 생필품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3개월 뒤에 내가 큰 부자가 된다고 해도 당장 굶고 살 수 없는 것처럼 미래 전세가격 하락을 예상해도 지금 길바닥에 텐트치고 잘 수 없는 노릇이다.

전세는 이처럼 단기간 수요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작은 수급의 변화만으로 가격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조금이라도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폭락하고 모자라면 폭등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만큼 무주택 전세거주자 입장에서는 변동이 심한 임대시장에 무방비할 정도로 노출되는 꼴이다.

아파트 입주단지를 보면 전세시장과 매매시장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매매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 반면 전세가격은 주변시세의 반 토막 수준으로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기간에 한꺼번에 입주하는 신규 입주물량은 짧은 기간에 스톡(stock)을 늘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전세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입주량이 몰리는 지역에서는 입주초기에 전세가격이 급락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는 등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전세는 이처럼 워낙 가격의 부침이 심해 가계로 하여금 예측 가능한 미래 자산설계를 어렵게 한다. 그래서 전세 제도 자체가 세입자의 주거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세입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월세에 비해 실제 지불하게 되는 자금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에서 전세가 자꾸 사라지고 반전세나 월세로 대체되고 있다. 세입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주거비용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제도는 자산 축적 기능이 없다. 월세 확산은 무주택서민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격이다. 최근 전세난에 따른 월세 확산 소식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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