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2%p 올리기)⑥`상상대로 건조`..한국조선의 힘!

세계 톱 10中 7개사가 우리 기업
굴뚝산업?..세계 최고 연구인력만 5천여명
''상상대로'' 만든다..조선3사 독보적 기술로 `우뚝''
  • 등록 2007-04-06 오전 10:10:00

    수정 2007-04-06 오전 10:10:00

[이데일리 박기수기자]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도 왠지 홀대받고 있는 느낌이 드는 업종이 있다. 조선과 중공업 분야다. 이들 업종은 항상 굴뚝 산업,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서 부가가치나 낮은 업종인양 치부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1위 업종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반도체'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진짜 강자는 조선 분야다. 그것도 독보적이다. 특히 세계 랭킹을 늘어놓으면 '아! 그렇구나'라고 놀란다. 


◇알고 보면 '놀라운' 얘기들


작년말 기준으로 조선분야 세계 '톱 10'중 국내 7개 기업이 독식했다.
 
1위(현대중공업(009540))부터 6위(STX조선(067250))까지는 모두 우리나라 기업이다. 배의 생산량 기준으로는 '독과점' 수준이다.
 
지난해 전체 수주잔량(1억1834만CGT<톤>)의 36.4%인 4290만CGT가 '우리 것'이다. 세계 1위로 우뚝 선 것은 지난해 2002년부터 6년째.
 
이런 탓에 지난 1970년대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였던 국내 조선산업은 이제 4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세계 1위라고 해도 국내 경제에 실익이 적으면 가치가 그만큼 퇴색한다. 조선업종은 이 방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국산화율. 조선업의 국산화율은 91%로, 100원짜리 배를 만들면 국산 원재료를 사용하는 비중이 91%란 얘기다.


잘 나가는 휴대폰이 70%, LCD나 PDP가 40%인 점을 감안하면, 같은 금액의 물건을 생산하고도 조선 분야의 경우 그만큼 실익이 크다는 얘기다. 국내 인력이나 기술을 더 많이 가져다 쓴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2만달러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 주저앉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내에서 특정 지역은 '강소국'처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자리잡고 있는 울산 동구. 전체 인구(20만명)의 4만명(내부 협력사 1만5000명 포함)이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절반 이상이 현대중공업 직원. 울산 전체의 소득 수준이 이미 3만달러를 넘어섰고, 동구는 그 이상을 한참 전에 넘어섰다는 게 현대중공업의 설명이다. 대우조선해양(042660)삼성중공업(010140) 조선소가 있는 거제도 예외가 아니다. 

◇ 왠 '굴뚝산업'?

조선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중 하나는 '굴뚝산업'이란 말이다. 이들은 "우리는 '연기를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동.기술 복합 집약적' 산업이라고 한다. 국내 조선산업이 2000년대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쌓아온 노하우 덕택이다.

지난 1990년대 세계 1위의 조선국가인 일본이 투자를 게을리할 때, 국내 설계와 연구인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현대중공업이 2000여명의 인력을 보유하는 등 '빅3'업체의 연구인력은 5000여명에 이른다.

배를 발주한 선주들은 '갑'이다. 그런데도 '을'에 해당하는 조선회사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베푼다.
 
대우조선해양은 얼마전 노르웨이의 자동차 운반선 발주사로부터 '배를 잘 만들어줬다'며 직원복지기금 1만달러를 받았다. 해양원유생산설비(FPSO)를 발주한 세브론은 '점심값'으로 10만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현대중공업도 컨테이너 선주로부터 3만달러를 받았다.

'갑 을'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 이런 현상은 국내 조선회사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뜨거운 열정의 결과물이다.  일본이 표준화 된 배만 만들면서 연구개발을 소홀히 할 때 국내 조선소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 '중국에 잡아먹힌다고?'

조선업계의 큰 흐름은 20세기 초 철선이 나오면서 시작된 영국과 유럽의 전성시대에서, 1950년대부터 일본, 그리고 21세기에 한국으로 바통이 넘어왔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이미 엄청난 건조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우려는 최근 수주량에서도 나타난다. 조선 및 해운시황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들어 2월말까지 중국의 수주량은 38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기록, 우리나라의 200만CGT보다 휠씬 많았다.
 
국내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에 대해 '양'만 보고 '질'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이 확보돼 있는데다, 고부가가치선을 선별적으로 수주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산화율이 90% 수준인데 비해 중국은 여전히 40% 수준을 밑돌고 있다. 때문에 최근 중국의 수주량 증가를 '추월'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 특히 중국이 수주하는 배는 대부분 수익성이 낮은 벌크선 등이 주류다.  
 
조선공업협회의 한장섭 부회장은 "양적인 면만 보면 중국이 우리를 추월한 것은 맞다"면서도 "현재 국내 조선업계는 도크가 다 차서 배를 더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상황이며, 이미 예견됐던 일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LNG선 등 고부가치는 지난해 우리가 독식했고, 올해에도 90% 이상을 국내 조선소가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기술력인데, 현재로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 '상상대로'.. 한국조선의 힘

무엇보다도 한국의 '막강한' 기술력을 중국이 따라올 수 없다. 일단 선주가 '상상하는 배'를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탁월하다는 평가다.
 
배가 이미 발주됐어도 중간에 설계변경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이다. 삼성중공업의 김부경 홍보팀장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능력이나 설계의 유연성, 인력의 숙련도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중국이 우리나라를 따라오는 것은 어렵다"고 단언한다. 

▲ 카트리나 피해 당시 ""구조선"" 역할을 했던 LNG-RV선

지난 2005년 8월, 멕스코만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를 삼켜버렸다. 폐허로 변한 암흑 도시의 구세주는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LNG-RV(액화천연가스 기화공급)'선.
 
통상 LNG선이 가스를 액화형태로 운반해, 지상에서 기체로 바꿔 소비자에 공급하는 것과 달리, LNG-RV선은 배에서 직접 가스형태로 바꿔 공급하는 설비를 갖춰놓았다. 덕분에 뉴올리언스는 복구에 필요한 에너지를 손쉽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이름을 날린 LNG-RV선은 주문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극지 운항용 전후 방향 쇄빙선'을 개발했다. 온통 얼음밭인 북극에서 원유를 실어나르려면, 유조선의 항해에 앞서 쇄빙선이 얼음을 깨야 한다. 하지만 이 배는 혼자 얼음을 깨면서 나아갈 수 있다. 배가 여간 단단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땅덩이이 좁은 대한민국'의 특수성이 오히려 창조정신을 키웠다. 도크(배를 만들기 위해 파넣은 육상의 거대한 구덩이)가 없어도 배를 잘 만든다.
 
▲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해상 바지선에서 배를 만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물 위에서 배를 만든다. 주문이 밀려드는 탓에 도크가 부족하자, 바다에서 만들기로 결정한 뒤, 궁리 끝에 세계 최초로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 공법을 개발했다. 
 
육상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배의 조각(블록)를 해상에 마련된 바지선 위에서 조립한 뒤 배가 다 만들어지면, 바지선을 가라앉혀서 배를 띄우는 방법이다. 해상에서 배를 용접할 경우, 흔들리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극복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초대형 배로는 처음으로 도크 없이 육상에서 배를 만들어 옆으로 밀어내는 방법으로 진수하는 독특한 건조공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넘버 원' 조선의 '먹거리 사냥'이 당분간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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