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그해 오늘]

1991년 1월30일 김부남 사건 발생
어린 시절 성폭행가해자 벌할 길 없자 사적으로 복수
최저형량보다 낮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 선고
성범죄 엄벌주의와 피해자 우선주의로 법 강화된 발판
  • 등록 2023-01-30 오전 12:03:00

    수정 2023-01-30 오전 12:03: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1월30일 서른 살 여성 김부남씨가 55세 남성 송백권씨를 살해했다. 김씨는 아홉 살 때 송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데 대한 복수로 살인을 결심하고 실행했다.

1991년 재판을 받던 김부남씨.(사진=KBS)
어려서 김씨네 집은 우물이 없었다. 송씨네 집에 달린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은 김씨의 몫이었다. 송씨는 이를 이용해 김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이 사실을 알리면 가족을 해칠 것이라는 송씨의 협박에 무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속을 앓았다.

이후 심각한 대인 기피증과 혐오증을 겪었다. 정상적인 학창생활도 사회생활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성인이 돼 짝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겪은 일이 떠올라서 부부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이혼하고 재혼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트라우마가 심해졌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송씨를 처벌해야겠다는 심정이 섰지만, 제도는 김씨 편이 아니었다. 성범죄는 친고죄여서 피해자가 6개월 안에 신고해야 가해자를 처벌하던 시대였다. 아홉 살이던 김씨는 이미 서른 살이 돼 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공소시효도 만료해서 송씨를 벌할 길이 없었다.

송씨를 찾아가 따졌으나 송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합의금으로 40만 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다 끝난 일이라고 반발했다. 절망한 김씨는 사적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송씨 집으로 찾아가 복수를 단행했다. 김씨의 칼날은 송씨의 사타구니에 집중됐다. 중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했던 송씨는 별 저항도 못하고 갔다.

살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김씨의 혐의는 명백했다. 김씨는 법정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스스로 자백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김씨 구명 운동이 벌어졌다. 검찰은 살인죄의 최소 형량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럼에도 유죄는 피할 수 없었다. 1심 법원은 징역 2년6개월의 집행을 5년간 유예하는 형을 선고했다. 최소 형량의 절반 수준을 선고하고 집행을 유예한 것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까지 그대로 확정됐다. 김씨는 치료감호소에서 지내다가 1993년 5월 출소했다.

이 사건은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김부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김보은-김진관 사건이 발생했다.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인이 돼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성폭행 친고죄는 2013년 폐지됐다.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처벌하고, 합의하더라도 처벌한다. 현재는 성폭행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사건은 공소시효 없이 처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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