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과 이익의 '불행 올림픽'…헷갈리면 '안전팡(FAANG)'

유동성 악화 "저PER나 고PER, 모두 가는 장은 끝"
실적 악화 "불황에는 '성장주'의 이익 희귀성 부각"
교집합 "美 빅테크, 인플레·디플레·고금리·저금리 다 커버"
  • 등록 2021-12-14 오전 12:30:00

    수정 2021-12-14 오전 11:43:18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기관들의 주식시장 전망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유동성과 상장사들의 실적이 모두 악화하는 상황에서, 둘 중 어디에 더 가중치가 실리느냐에 따라 판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선 최근 반도체를 필두로 시가총액 규모가 큰 경기민감주들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양측의 대조가 더 돋보이는 모양새다. 어느 한 쪽을 택하기 어렵다는 점은 시장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버틸 수 있는 투자자산으로는 미국의 빅테크 대형주가 거론된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12월 가치·성장 수익률 각각 3.75%, 2.62%…삼성전자 7.85%

며칠 남지 않은 올해 자본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오는 14~15일(현지시간) 예정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로 꼽힌다. 물가 상승 우려가 극에 달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속도를 올릴 것이 전망되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10일 발표된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기대비 6.8% 올라 40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예상보다는 양호하다는 분석에 연준의 정상화 기조가 다소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안심은 이르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11월 CPI가 나온 이후 시장은 예상보다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CPI에 이어 발표된 12월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지수에서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3.0%로 잘 고정돼 있다”며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에 대한 인플레 평가가 혹독한 점 등에 단기적으로는 연준의 긴축 기조는 시장 예상보다 강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 강화가 예상되는 만큼, 주식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유동성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동성이 ‘썰물’로 바뀌는 기점에선 성장주보단 가치주, 주가수익비율(PER) 관점에선 저PER, 시가총액 규모로는 대형주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유동성이 더 이상 늘지 않으며 넉넉하지 않을 땐 높은 밸류에이션의 주식은 함께 갈 수 없단 견해다. 1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0일까지 WMI500 지수 기준 순수가치와 순수성장(총액)의 등락률은 각각 3.75%, 2.62%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총 1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는 7.85% 상승했다. 이같은 증시 분위기는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유동성을 뺀다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통화정책 정상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속도가 어찌 됐든 해당 국면에 접어들었으면, 유동성이 풍부해 저PER나 고PER나 상관없이 오르던 장세는 지속될 수 없다”라며 라고 판단했다.

NH투자증권은 한 발 더 나가 유동성 둔화가 내년 선진국 경기 반등 상황과 겹쳐 나타날 것이란 입장이다. 이 경우 대형 가치주 우세 정도는 더 강할 걸로 보인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시장의 새로운 걱정거리는 미 연준의 조기 긴축 우려”라며 “다만 인플레 원인이 공급요인(Cost-push)이 아닌 수요요인(Demand-pull)이라면 장기적으로 금리 상승이 주식시장에 부정적이진 않아 테이퍼링 종료 이벤트에 따른 조정은 매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단 판단”이라고 짚었다. 이어 “투자가 집중되는 반도체 등 대형 경기민감 가치주의 강세를 전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익 증가율 가속 기업, 한 달 만에 97개→48개

다른 한쪽에선 이익이 둔화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날 삼성증권과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10일 기준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3개월 전 예측치 대비 2.6% 감소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전월 대비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 증가율이 전 달 수치보다 개선된 곳은 총 48개 기업이다. 시점을 한 달 더 전인 지난 11월 10일로 옮기면 같은 기간 해당 기업은 97개로 2배 정도 더 많다. 실적 전망치가 점점 더 좋아지는 기업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을 중심에 놓으면 지수 전체의 이익 수준이 둔화되는 국면에선 상대적으로 실적이 개선되는 소수의 기업에 시선이 쏠리게 된다. 투자자들이 희귀한 이익 성장에 높은 가치를 부여, 성장주가 강세를 보인단 것이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나 미국이나 상장사들의 이익이 오르는 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불황에는 실적 개선주, 고PER주에 주목하는 게 맞다 본다”며 “유동성이냐 실적이냐는 문제에서 실적에 더 가중치를 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리 상승이 고PER주에 부담인 건 사실이지만, 지금이 경기가 활황이어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게 아닌 인플레에 기반한 만큼, 저성장 국면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빅테크, 디플레에 강하면서 가격 결정력도 가져”

유동성과 이익 악화 영향력이 어디가 더 크냐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둘 다 안 좋은 건 맞단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 빅테크주 비중 확대가 유효할 수 있단 관측도 있다. 시가총액 3조달러를 앞둔 애플은 지난 한 달간 19.63% 상승, 같은 기간 나스닥이 1.41% 하락을 크게 상회했다. 오건영 신한은행 IPS본부 부부장은 “미국 대형 성장주는 성장이 전반적으로 둔화될 때 유일한 성장을 보이기 때문에 디플레에 매우 강하면서, 제품 원가 상승을 소비자에 전가할 수 있는 가격 결정력을 가진 기업으로도 거론된다”며 “금리가 낮아 유동성이 늘어도 차별적 성장이 나오는 곳으로 금리가 높으면 꾸준한 현금 흐름과 부채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 잘 버틴다고 얘기된다”고 전했다. 이어 “인플레에도, 디플레에도, 저금리에도, 고금리에도 이밖에 안전자산 성격도 있다”면서 “다만 미국 대형 성장주가 영원하다는 생각보단 유동성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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