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소득 불평등 문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쓴 책 ‘21세기 자본’이 있다. 요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본, 즉 부동산·주식·채권·예금 등을 보유해 벌어들이는 소득(자본소득)이 일해서 버는 소득(노동소득)보다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장기간의 자료를 분석해 부의 세습과 불평등의 원인을 밝힌 이 책은 사회적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은 최근 국내 최초로 국민순자산(자본)을 평가한 ‘국민 대차대조표’를 내놓고 논쟁에 새 불을 지폈다. 피케티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우리나라에서 부가 어떻게 분배되는지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다. 국내 자본의 총량(국부)과 국민순소득(NNI)의 크기, 자본과 노동의 소득 분배율 등을 따져봤더니 불평등 추이가 위태로운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자들이 축적한 자본이 연간 국민 소득보다 월등히 많아,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세습의 폐단이 만연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이 우리 실정에 적합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쌓인 돈이 많다고 부자일수록 반드시 큰 돈을 번다는 의미는 아니라서다. 축적된 자본의 정체부터 보자. 2012년 말 기준 국민순자산 1경630.6조원 중 토지와 건설자산 몫이 89%(9457.3조원)에 이른다. 자본 대부분이 땅과 건물, 사회간접자본(SOC) 등 부동산에 쏠린 것이다. 가계 자산의 75%도 부동산이다. 주택 시가총액(3094조원)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웃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란 운영 수익을 내기보다 싸게 사서 비싼 값에 되파는 전형적인 ‘자본 차익형’ 투자 상품으로 여겨졌다. 집값 상승기를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이 방만한 자본은 일그러진 분배의 원인이라기보다, 자기 증식을 멈춘 ‘묻지마 투자’의 결과물이자 ‘속 빈 강정’이라고 봐야 맞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은 이제 흔히 듣는 하소연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투자로 자본 차익을 실현하기 어렵자 월세 등 운영 수익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익 실현이 결코 녹록지 않다. 이렇게 보면 국내 자본은 덩치만 클 뿐 오히려 고립된 채로 위기를 맞닥뜨린 거인에 가깝다. 이대로라면 부동산에 묶인 돈이 부동산 가치 하락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본 축소 및 양극화 해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정부는 이런 현상을 손 놓고 바라만 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부동산 자본을 떠받쳐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부동산 인질 사회’의 딜레마에 빠진 탓이다.
그러나 부동산에 고인 돈을 언제까지 가둬만 둘 텐가. 지금은 정부가 각종 정책을 써가며 부동산 투자의 수익을 보장할 게 아니라 ‘돈의 흐름’을 바꿀 때다. 부동산에 몰린 뭉칫돈이 서민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집값 등 그간 초래한 불평등의 면면들을 완화하면서 동시에 적정 수익이 보장되는 생산적인 투자로 흐를 수 있게 물꼬를 터야 한다.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치부가 부의 분배에 대한 논란 속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위기가 곧 기회다. 정부와 학계가 이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논쟁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