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런 식으론 급발진을 규명할 수 없습니다.”(한 자동차 공업사 대표)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국토교통부의 한 공무원)
지난달 26~27일 국토교통부가 경기도 화성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주관한 급발진 공개 재현 실험에서 실강이가 벌어졌다. 사실상 ‘급발진은 없다’는 전제 하에 열린 실험이었기 때문에 실험을 지켜봤던 참석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
1994년 한국소비자원에 ‘차가 운전자와의 의지와 무관하게 급가속했다’는 제보가 처음 접수됐다. 국내 급발진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그 비율은 늘어 97년 100건을 넘어서더니 99년엔 무려 1000건을 넘어섰다.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일본에선 이보다 더 먼저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었다.
국토부는 지난 99년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블랙박스 탑재 비율이 늘어난 2010년을 전후로 급발진 추정 사고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늘었고, 정부가 나서 이번에 공개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급발진 추정 사고 사례와 관련자의 제보를 받아 실증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는 논란만 키웠다.
| 한 연구원이 지난 26일 급발진 공개실험을 진행하는 모습. 차량 가속페달 센서(APS)에 이상 전압을 줘 차량에 이상이 생기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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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만 탓할 수도 없다. 급발진은 전 세계적인 난제다. ‘급발진이 있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고,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조상 결함에 의한) 급발진은 없다’고 하는 자동차 회사들도 이를 운전자 조작 실수라고 단언할 수 없다. 페달을 밟았는지 당사자 외에는 확인할 수 없다. 국내 뿐 아니라 미국 항공우주국(NASA) 조사 때도 차량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럽에선 급발진 논란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아 관련 집계나 조사도 없다.
급발진 추정 사고 발생 가능성은 대략 10만 분의 1이다. 지난해 국내 승용차 등록대수는 약 1500만대, 소비자원에 접수된 급발진 추정 사고는 130여건이었다. 대부분 사례는 사고를 기계·전자적으로 분석결과 분명히 제조상의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류에 의한 급발진이 있다면, 급정거 등 다른 이상 현상도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안전에 가장 치명적인 급발진 사고만 발생했다.
블랙박스나 CCTV 영상의 급발진 추정사고를 보면 ‘나한테도 저런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마치 UFO처럼 급발진도 ‘믿느냐, 안 믿느냐’는 식으로 의견이 갈린다. 이번 공개실험 평가위원장을 맡은 김영일 아주자동차대 교수는 급발진에 대해 “벼락을 맞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확률은 낮지만 분명히 일어나는데 그 원인을 속 시원히 밝힐 방법이 없다는 답답함을 표현한 말이다.
공개실험에 참관했던 한 완성차 제조사 관계자는 “기계적이나 조작실수 모두 운전자 의도와 무관한 급발진 추정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서 “제조사 입장에선 이를 막을 방법을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