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우영 칼럼니스트]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군가요?” 리더십 관련 특강을 시작하면서 청중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터져 나온 대답은 바로 “안철수”였다. 청중들은 안철수라는 이름과 리더십을 한 덩어리로 연합해서 지각하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안철수”라는 답이 나온 이후로 청중들이 한 동안 다른 리더의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치 리더십의 대명사격인 사람들의 이름을 다 말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해낼 사람이 없어서 침묵이 흐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기억연구에 따르면, 어떤 대상(예, 안철수)이 한 범주(예, 리더)와 강하게 연합되면 범주내의 다른 대상(예, 이순신 장군)이 생각날 가능성은 감소된다고 한다. 따라서 리더십 강의를 듣고 있던 청중들이 “안철수”라는 대답을 한 후에 보여준 침묵은 그들에게 안철수와 리더라는 두 개의 개념이 매우 강하게 연합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선 후보 지지율에 대한 최근(11월21일)의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교수는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안철수 교수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매우 제한된 표본이기는 하지만, 리더십 강의를 듣던 청중들의 반응을 고려한다면,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안철수 교수에 대한 지지는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바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안철수’와 ‘리더’라는 두 개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함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머릿속에 강하게 연합되어 있는 두 개의 개념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안철수 교수에 대한 지지도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안철수 교수를 리더로 지각하게 만든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 하나만 꼽는다면 ‘신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전부터 대중들로부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꼽히곤 했다. 그가 ‘신뢰’를 획득하는 방법은 독특한데, 바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비싸게 팔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 경영난에 봉착한 회사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외국기업에 넘기면 또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 결과, 글로벌 보안업체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사업을 독점하지 못했고,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백신을 비싼 가격으로 팔지 못하게 되었다. 회사를 세계적인 인터넷 보안회사로 키워놓았으니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내줬다.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서울시장에 당선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고, 1,500억원 상당의 자신이 소유한 주식 절반을 사회에 내놓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득이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옳은 경우에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즉 자신의 이득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나 행동을 했을 경우에 사람들은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된다. 자신의 이득과는 반대되는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신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에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심리학의 힘 P`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