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초콜릿 $2.20
카푸치노 $2.55
카페모카 $2.75
화이트 초콜릿 모카 $3.20
20온스 카푸치노 $3.40
워싱턴 DC 14번가에 있는 스타벅스 가격표다. 잠깐 이 메뉴판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의미를 분석해볼까.
핫 초콜릿-가식 없음 $2.20
카푸치노-가식 없음 $2.55
이들을 혼합한 것-나는 특별해 $2.75
색다른 파우더 추가-나는 아주 특별해 $3.20
엄청 많이 줘-나는 식탐이 많아 $3.40
사실 스타벅스는 커피 하나로 고객에게 수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휼륭한 서비스 정신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가격이 1달러20센트나 차이 나는 핫초콜릿과 20온스 카푸치노의 원가 차이는 얼마나 날까.
스타벅스 커피가 잘 팔리는 이유는 뭘까. 할인마트에 가면 왜 항상 예상보다 지출을 많이 할까. 도시의 땅주인들이 그린벨트를 환영하는 이유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의 자격증 취득 시험이 어려운 이유는. 중고차 시장에서 쓸 만한 중고차를 사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에 경제학의 원리가 숨어있다.
메뉴판처럼 스타벅스에 가면 다양한 가격대의 커피가 있다. 화이트 초콜릿 시럽이나 초콜릿 파우더, 휘핑 크림 등 성분이 추가될 때마다 가격이 껑충껑충 뛴다. 하지만 원가 차이는 1~2센트 뿐이다. 그렇다면 스타벅스가 고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가. 아니다. 스타벅스는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이 스스로 호사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놓은 것이다.
컴퓨터 업계에서도 놀라운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IBM의 저가 레이저 프린터 모델 `레이저라이트 E`는 고급 모델인 `레이저 라이터`와 똑같은 부품으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단, 싼 모델에는 속도를 늦춰주는 칩이 추가로 설치돼 있을 뿐이다. IBM은 프린터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같은 설계로 대량생산한 뒤 서로 다른 가격에 팔았다. 사람들이 비싼 프린터를 사도록 하기 위해서다.
소프트웨어 패키지도 마찬가지. 소프트웨어 제품은 흔히 비싼 전문가용과 그보다 저렴한 일반인용 버전으로 나뉘어 판매된다. 어느 버전을 개발하는데 비용이 더 많이 들었을까. 정답은 뜻밖에도 일반인용이다. 통상적으로 전문가용 버전이 먼저 설계되고 이중 일부 기능을 제한하여 일반인용 버전이 만들어진다. 전문가용 버전이 높은 가격에 팔리기는 하지만 추가로 개발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일반인용이다.
우리 나라 농부들은 미국, 중국의 농부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 현대 자동차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국내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영국의 사립학교가 땅 주인들의 호주머니를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남의 땅 주인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데에는 고교 평준화 제도가 적잖이 기여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늘 참여하고 있는 이 커다란 시장에서는 치열한 힘의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 책은 흥미롭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를 일깨워준다.
<저자>팀 하포드(Tim Haford). 파이낸셜타임즈 경제담당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세계은행에서 국제금융공사(IFC) 수석 경제학자들의 집필 자문을 맡고 있으며 파이낸셜타임즈매거진에 `Dear Economist(안녕, 경제학자)`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출판사>웅진
<정가>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