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리픽싱 없는 CB 발행, 자신감일까 함정일까

대봉엘에스·인벤티지랩 300억대 CB 리픽싱 제외
주가 상승에 대한 자신감 반영…고평가 메시지 전달
투자자 불확실성 큰 만큼 발행요건 면밀히 살펴야
  • 등록 2024-10-08 오전 5:42:51

    수정 2024-10-08 오전 5:42:51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최근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면서 리픽싱(Refixing·전환가액 조정)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은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리픽싱은 전환가액을 주가에 연동해 조정함으로써 CB 투자자들을 주가하락 리스크로부터 보호해주는 장치다. CB 발행시 필수로 여겨졌던 리픽싱 조항을 넣지 않았다는 것은 주가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과 밸류업(Value Up·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대한 확신을 시장에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선 손실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인 만큼 회사가 전환가액 설정 과정에서 수요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봉엘에스 사옥 전경. (사진=대봉엘에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봉엘에스(078140)와 인벤티지랩(389470)은 지난달 리픽싱 조항을 제외하고 각각 300억원, 39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양사는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운영자금과 시설투자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대봉엘에스가 발행한 CB의 전환가액은 1만6982원으로 전환에 따라 발행될 주식은 176만6576주다. 이는 전체 발행 주식 총수 대비 13.74%에 해당하는 수치다. 인벤티지랩이 설정한 전환가액은 주당 1만8984원, 주식총수 대비 비율은 17.04%(205만4361주)다.

CB는 향후 주식으로 바꿀 권리가 포함돼 있는 채권을 말한다. 일반 회사채 대비 이자율이 낮지만 미래 가치가 높은 기업의 CB의 경우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려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즉 미래 가치를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인 셈이다. 이같은 특성상 신용도가 높은 대형사보다는 바이오와 배터리 등 미래 유망 업종에 포진해 있는 중견 이하 기업들이 주로 활용한다.

리픽싱은 전환권 행사가격조정 조항으로 이를 통해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 시 발행된 CB에 대한 전환권 행사가격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 리픽싱 과정에서 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만큼 기존 주주보다는 신규투자자에게 유리한 조항이다. 통상 리픽싱을 통해 최초 전환가격의 70%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이들 업체가 리픽싱 조항 없는 CB 발행에 나선 것은 회사 가치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주가 하락에 따른 전환가액을 조정할 상황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회사가 주식 가치를 저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대봉엘에스와 인벤티지랩은 발행한 CB에 대해 리픽싱 조항 제외는 물론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을 낮게 설정했다. 사실상 주가 상승에 베팅한 것으로 주식 전환 후 시세차익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남긴 셈이다. 대봉엘에스 CB의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은 0%, 인벤티지랩은 표면이자율 0%, 만기이자율 3%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CB를 발행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자신 있으니 리픽싱 조항을 제외하는 것”이라며 “이는 회사에 대한 신용과 투자수익을 보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리픽싱 조항 제외가 투자자들에게 잠재적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표면이자율과 전환기간 등 다른 요건을 면밀하게 검토 후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CB 투자에 참여하는 대형 인수자들의 면면을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CB는 자본시장의 변동성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리픽싱 조항이 빠질 경우 투자자들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며 “투자에 앞서 전환기간과 표면이자율 등 발행요건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에 참여하는 금융기관이 직접 인수하는 여부와 3자배정의 경우 3자가 되는 주체의 펀더멘털 등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며 “발행기업 역시 리픽싱 조항을 제외하는 만큼 수요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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