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공장 설립 보조금으로 60억달러(약 8조원)를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과 삼성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들을 통해 최근 밝혀진 내용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미국내 생산 및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시설 투자액의 최대 15%를 지급한다는 반도체지원법 규정에 따른 것이지만 예상치의 3배에 가까운 거금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 상대인 대만 TSMC가 받을 예상 보조금 50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삼성의 보조금 소식은 반도체 패권 전쟁이 국가 간 자금력 싸움으로 격화됐음을 알려준다. 보조금을 외국 기업에 퍼준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미 정부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 것임을 고려하면 삼성도 충분한 매력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삼성이 텍사스주 공장 외에 최첨단 공장 1~2개를 더 짓겠다고 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유럽·인도 등도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기업 유치에 나선 점에 비춰본다면 “보조금 있는 곳에 반도체공장 있다”는 표현이 무리가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은 아직 강자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 정치권이 똘똘 뭉쳐 벌이는 국가 대항전에서 우리의 현실은 암울하다. 반도체 부활을 노리는 일본은 이미 18조원 규모의 1차 지원금에 2차 지원금까지 내걸었다. TSMC가 2월 완공한 구마모토현 제1공장 건설에 4760억엔(약 4조 300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제 2공장엔 7300억엔(약 6조 6000억원)을 지급한다. 제1공장은 5년이 더 걸릴 건설 기간을 3년 미만으로 단축시켰다. 부지 조성과 인허가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킨 덕이다.
전(錢)과 속도가 승패를 좌우할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에겐 위기감이 보이지 않는다. 투자세액공제가 대기업 특혜라며 야당이 발목을 잡았던 반도체 특별법은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보조금은 언감생심이다. SK하이닉스가 2019년 발표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주변 지자체의 비협조와 환경영향 평가 등에 막혀 있다가 작년 초에야 첫 삽을 떴다. 반도체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미래 먹거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모두의 냉정한 판단과 현실 인식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