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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0일 오전 9시 19분께 “누군가 아파트 4층에서 떨어진 것 같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경찰이 대구 달서구의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참혹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피해자 A씨가 맨발로 아파트 화단에 쓰러져 있었으며 A씨의 부모는 집안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는 한 사람으로 특정됐다. A씨와 두 달가량 교제했던 장씨였다.
장씨는 사건 발생 전 A씨를 수차례 폭행하고 상해를 입혔는데 이를 안 A씨 부모가 자신의 부모에게 연락하자 앙심을 품은 것으로 드러났다. 폭행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며 총 동아리 연합회 회장을 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의 부모에게 꾸중을 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장씨는 본인 잘못으로 인한 결과를 따지겠다며 헤어진 A씨 집에 찾아갔고 A씨 부모가 이 사실을 자신의 부모에게 알리자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범행 10일 전 배관공으로 위장하겠다고 마음먹고 사용할 흉기와 피해자의 자택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반항을 저지하기 위한 도구부터 자신에게 피가 묻을 것을 대비해 여벌의 옷을 챙기는 등 치밀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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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2014년 5월 19일 오후 6시 20분께 피해자의 아파트에 도착해 “배관 점검을 나왔다”고 거짓말한 뒤 집에 들어갔다. 이후 A씨 부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이들의 휴대폰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A씨가 일찍 귀가하도록 종용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A씨가 집에 돌아오자 장씨는 그를 감금하고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한 뒤 폭행했다. 장씨는 A씨가 ‘아버지만이라도 살려달라’며 119에 신고해 달라고 하자 자신의 지시대로 행동할 것을 강요하며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A씨의 부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던 A씨는 탈출하기 위해 아파트 4층에서 뛰어내렸고 112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감금된 지 약 8시간 만이었다.
장씨는 같은 날 오후 1시께 경북 경산시의 자취방에서 경찰에게 붙잡혔고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처음에는 폭행 사실을 반성하고 있었다”면서도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범행의 원인을 피해자들에게 떠넘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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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형이 너무 과중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범균)는 2015년 4월 9일 장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사형 선고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부모가 피고인의 부모에게 폭행을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며 “사소한 일로 자존감에 상처를 받은 것을 참지 못해 분노하고 그 감정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한 피고인의 행위는 내면의 크나큰 악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장씨 측은 상고장을 제출했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사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우리나라에서 1998년 이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됐고 최근 사형제도 폐지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면서도 “입법자의 결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최고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장씨는 이날 형이 집행되지 않은 61번째 사형 확정자가 돼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