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던 몸값에 함박웃음을 짓던 국내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현재 상황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산업 트렌드를 제대로 탄 덕에 이들은 한 때 수 천억 원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내세우며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시장 불확실성 여파로 최근 1년새 밸류에이션이 뚝 떨어지며 이러한 상황을 다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원하는 밸류를 인정받기 위해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무리하게 투자를 받아가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 밸류에이션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과 달라진 만큼, 버티기만 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잠재력만 믿고 버티기보다는 본질적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차별화 전략을 짜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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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쳤던 국내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울상이다. 수천억 원대로 치솟던 몸값이 불과 1년 만에 수백억 원대로 뚝 떨어지면서다.
문제는 가상자산 시장에 잇따른 악재가 터지면서 드러났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에 이어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으로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의 몸값은 높이 비상한 만큼 속도감 있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깐이나마 호시절을 누리던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주춤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여기에 시장 불확실성으로 투자사들이 매물의 잠재력보다 본질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점도 한 몫 거들었다. 지난해 기록적으로 뛴 기준금리와 대내외적 경기 불확실성에 투자사들은 보수적인 관점에서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따지고 투자를 집행했다. 유니콘 기업도 눈높이를 낮춰야 생존하는 마당에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배경이다.
관심은 여전하지만…“경쟁력 없으면 도산”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형 거래소들은 일찍이 고정비용을 최소화하고자 인건비와 신규 투자 등을 줄여왔다”며 “일부는 자금난에 봉착해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죽하면 ‘런웨이(Runway, 추가 투자 없이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으로, 보유 현금을 월 사용 현금으로 나눈 값)’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고난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와중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의 지분 투자 및 인수에 대한 투자자들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진출을 희망하는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일부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들과 지분 투자를 논의하고 있다. 이미 인수 발표를 마친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최근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중 하나인 고팍스 지분 40%를 인수했다.
이 밖에 국내 기업들은 디지털 신산업 추진 차원에서 인수 의지를 드러내는 상황이다. 국내 한 기업은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 B에 수십억 원을 제시하며 통인수 제안을 했지만 이내 무산됐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잠재적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거래소 인수 관심은 여전한 편”이라면서도 “거래량이 나오지 않으면 거래소 가치가 없기때문에 그간 제시됐던 수천억 원의 밸류가 의미 없다고 보는 관계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이들 중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유저를 확보한 곳 위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외의 경쟁력을 내세우기 어려운 거래소들은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