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올해 자본시장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상반기에 저조했고, 하반기도 반등하지 못한 ‘상저하저’(上低下低)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시장 침체에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올해를 ‘최악의 한 해’로 평가하고 있다. 인수합병(M&A) 협상이 돌연 무산되는가 하면 손절을 각오한 매각 사례까지 나오면서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음을 시장 관계자들도 통감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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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지난해 이맘때로 돌려보자. 2021년 자본시장에서 이뤄진 1조원 이상 M&A 거래(계약·잔금납입 포함)는 15건이었다. SK하이닉스(000660)의 인텔 낸드 사업 부문 인수는 거래액만 10조6740억원에 이르는 메가톤급 딜로 기록되며 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미국 처브사(社)에 5조원에 매각된 라이나 생명과 유통 시장을 화끈하게 달궜던 이베이코리아(3조4400억원), 넷마블이 인수한 카지노 게임사인 스핀엑스(2조6260억원), 두산공작기계(2조4000억원), 대우건설(2조1000억원), 미국 매치그룹이 인수한 하이퍼커넥트(2조원) 등이 메가딜로 기록됐다. 2조원 넘는 M&A 거래만 7건을 기록하면서 전체 시장 열기를 견인했다.
그런데 올해 자본시장에서 2조원 넘는 M&A는 ‘미국판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포쉬마크를 약 2조1000억원에 인수한 네이버(035420)와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042660)(2조원) 두 건뿐이다. 1조원대 거래로 범위를 넓히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의 SKC필름사업부(1조6000억원)가 꼽히는 가운데 MBK파트너스가 올해를 이틀 앞둔 29일 3D구강스캐너 업체 ‘메디트’를 2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에 종결될 계약을 모두 더하더라도 지난해 거래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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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협상 과정에서 급락한 주가를 거래 무산 이유로 꼽는다. 매각 계약이 체결된 올해 3월 14일 당시 디오 주가는 3만5500원이었다. 그러나 계약 해제 공시가 나온 30일 2만6600원에 장을 마치며 5개월 만에 주가가 25%나 하락했다. 디오 측도 매각 결렬 사유에 대해 “대외 경제 여건 변화와 양수인의 투자의사 철회 등으로 주식 매매 계약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눈물의 손절·위약금 불사까지…내년도 우울
최근에는 수백억원 규모 위약금을 고려하면서까지 계약이 무산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1조3000억원 규모로 매각 절차를 밟고 있던 PI첨단소재(178920)가 대표적이다.
PEF 운용사인 베어링PEA는 지난 6월 글랜우드PE가 보유한 PI첨단소재 지분 54%를 1조2750억원에 거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당시 1주당 가격은 8만302원이었다. 당초 양측은 지난 9월 30일 매각을 끝내기로 했다. 그러다 협상 기한을 한 차례 연장해 오는 12월 30일까지 거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2차 협상기한을 약 3주가량 앞두고 베어링PEA 측에서 글랜우드PE에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공들이던 매각 작업이 물거품이 된 글랜우드PE도 정면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베어링PEA의 인수 계약 해제 통지가 계약상 무효라고 판단하고 베어링PEA 측에 계약 이행 촉구 입장을 밝히면서 법적 공방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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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는 인수 당시 700개 가까운 매장을 자랑하는 프랜차이즈였다. 2016년 1200억원을 웃돌았던 매출은 2020년 530억원 수준까지 감소했다. 당기순이익도 2017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자 사실상 손절 수준의 매각을 단행했다는 분석이다.
사상 초유의 ‘상저하저’를 기록한 M&A 시장의 내년 전망은 어떨까.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상반기가 올해 하반기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년 새 두 배로 뛴 인수금융 금리가 연초부터 발목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내년 상반기가 올해 하반기보다 분위기가 더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자금 출자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내년에도 사업 계획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고민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