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외울 수 있는 한, 유인촌의 연기는 계속된다

[연극 '햄릿'으로 6년 만에 무대 복귀]
햄릿만 6번 연기한 햄릿 전문가
이번엔 악역 클로디어스 도전
수컷 냄새 물씬 나는 왕 보여줄 것
8년 공직 생활 후회는 없어
기운 떨어지는 날까지 연극할 것
  • 등록 2022-06-30 오전 12:05:00

    수정 2022-06-30 오전 12:05: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오랜만에 배우로 연극 무대에 오른다는 부담은 없어요. 배우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내 몫을 다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큽니다.”

배우 유인촌(71)이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다음달 13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햄릿’을 통해서다. 2016년 ‘페리클레스’ 이후 6년 만의 연극 출연이다.

최근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에서 유인촌을 만났다. 한동안 배우 활동이 뜸했던 이유를 묻자 그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내가 출연할 만한 작품이 많이 없었다”며 “이번엔 젊은 배우들과 나이 든 배우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어서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13일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서 클로디어스 역으로 6년 만에 무대에 돌아오는 배우 유인촌이 최근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햄릿’은 연극배우 유인촌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유인촌은 1980년대 초반 극단 현대극장의 표재순 연출이 연출한 ‘햄릿’을 시작으로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주인공 햄릿을 연기했다. 연극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햄릿’ 전문가다.

유인촌은 “‘햄릿’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햄릿은 군인이면서 철학자이고 시인이며 지식인이기도 한 인물”이라며 “상업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작품이라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데, 연출가와 제작자가 나를 계속 선택해주는 덕분에 햄릿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유인촌이 맡은 역할은 햄릿이 아니다. 햄릿을 고뇌에 빠트리는 숙부 클로디어스 역으로 연기 변신을 예고한다. 이번 ‘햄릿’의 관람 포인트는 유인촌을 비롯한 선배 배우들이 조연과 단역으로 참여한다는 점. 유인촌 외에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등이 조연과 단역을 맡고 젊은 후배 강필석, 박건형, 박지연이 각각 주역인 햄릿, 레티어스, 오필리어 역으로 출연한다. 선후배 배우들이 50년 차이를 뛰어넘어 호흡을 맞춘다.

유인촌에게는 연기 인생 50여 년 만의 악역 도전이기도 하다. 그는 “햄릿을 연기하면 주변 인물보다는 햄릿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데, 클로디어스가 돼보니 작품 전체가 색다르게 보여서 아예 새로운 마음으로 ‘햄릿’을 준비하고 있다”며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수컷 냄새가 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13일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서 클로디어스 역으로 6년 만에 무대에 돌아오는 배우 유인촌이 최근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대극장 연극 많아져야”

대극장에서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정통 연극이라는 점도 이번 작품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유인촌은 “연극이 계속되기 위해선 이런 시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이 대중과 멀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큰 규모의 작품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공공기관이나 민간 제작사가 이런 대형 연극을 계속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들 또한 연극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연기의 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요.”

유인촌은 1971년 연극배우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MBC 공채 탤런트 6기로 합격한 뒤 드라마, 영화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한 드라마 ‘전원일기’에 출연하며 국민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대중매체 활동을 하면서도 연극 무대를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무대에 올랐다.

2000년대 후반 문화예술 행정가로 공직 활동을 시작하면서 배우 활동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이후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두루 거쳤다. 공직 활동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안 좋은 이미지도 생겼지만, 그는 그런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다시 무대로 돌아와 2014년부터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배우·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공직 생활에 후회는 없어요. 그때의 일을 일일이 설명하려고 하면 또 끝이 없고요. 어떻게 하다 보니 제게 주어진 일이었고, 그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인 K컬처도 주목하고 있다. 유인촌은 “K컬처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조금씩 축적된 것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한류는 그동안 현장 관계자들의 많은 노력이 바탕이 된 결과예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노력했기에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그 이면엔 다양한 지원을 바탕으로 한 인력 양성이 있었고요. 최근 클래식에서 콩쿠르 우승자들이 다수 나오는 것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 같은 곳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문화계 전반에서 재능 있는 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영역만 만들어준다면 K컬처의 폭발력은 더욱 커질 겁니다.”

다음달 13일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서 클로디어스 역으로 6년 만에 무대에 돌아오는 배우 유인촌이 최근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연말에는 ‘겨울나그네’ 연출가로 변신

유인촌의 아들 남윤호(본명 유대식)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다. 남윤호는 한국인 배우 최초로 영국왕립연극학교 석사를 졸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부자 관계라는 사실은 2016년 연극 ‘페리클레스’에 함께 출연하면서 알려졌다. 유인촌은 “아들도 크면서 보고 자란 게 있어서 평소에도 연기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며 “‘페리클레스’를 같이 할 때도 그냥 편하게 하라고만 했고, 앞으로도 같이 작품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오는 연말에는 연출가로도 변신한다.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작은 배역으로 출연하는 음악극 ‘겨울 나그네’를 세종문화회관에 올릴 예정이다. 유인촌은 “예술가는 99%의 노력과 1%의 운으로 이뤄진다”며 “나 역시 부족한 1%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죽기 전까지 연극을 할 거냐고요? 연극은 기운이 떨어지면 못해요. 나이 먹으면서 대사를 못 외우게 되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죠. 또한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에요.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는 연기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유인촌은…

△1951년 전북 완주 출생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학사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언론홍보학과 언론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예술학 석사 △1971년 연극배우로 데뷔 △1973년 MBC 공채 탤런트 6기 △중앙대 예술대 연극학과 교수 △2004~2007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2008~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2011~2013년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2012년 예술의전당 이사장 △제10회 이해랑연극상 △제34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제32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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