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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수개월이 지난 후, 응급실에 호흡곤란으로 재방문을 하게 되었고, 다시금 심기능이 심하게 저하됐고, 심방세동이 재발했다. 약물 치료를 하는 도중에 상태가 호전되면서 다시 약물복용을 끊기 시작했고, 갑작스럽게 심한 복통이 발생해 응급실을 재방문했다. 상태를 살펴보니 심방세동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혈전 예방약을 복용하지 않으면서 혈전이 신장을 먹여 살리는 동맥에 붙어 신장의 일부가 괴사됐고, 복통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머리로 혈전이 날아가 중풍이 생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잔소리를 하면서 병원에 꼭 다녀야 하고, 약물 복용을 지속해야 함을 설명했으나 이미 환자의 심 기능은 많이 떨어져서 약물 치료로 더 이상 회복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증상의 호전은 보일 수 있었지만 제세동기와 함께 추후 호흡곤란이 지속될 경우, 심장이식을 고려해야만 했다. 환자에게 제세동기를 추천했는데, 아직 젊어서 그런지 혹은 약물 치료를 하면서 증상이 다시 개선돼서인지 이번에는 약물 치료는 잘 받을 테니 절대 제세동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입원 기간 중에 심방세동 이외에 일시적 심실 부정맥이 지나갔고, 1년 이상 약물 복용을 했지만 현재 심기능은 매우 떨어진 상태로 급사를 방지하기 위해 제세동기는 필수적이었다.
환자를 설득했으나 무리한 설득으로 인해 외래까지 끊을까 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약물 복용을 잘 하시고, 숨이 차면 반드시 내원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경과 관찰을 했다. 역시나 어느 날 다시 일로 무리를 하고, 감기까지 한꺼번에 걸리면서 길가에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응급실로 내원했고, 119에서 심폐소생술 중 심실세동이 보여 제세동 이후 회복되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살아난 환자는 입원해 삽입형제세동기를 삽입하고 퇴원했다. 젊은 분인데 여러 차례 주치의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한 분이었다.
아직 급성 심장사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겪게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삽입형 제세동기를 시술하는 것을 1차 예방이라고 하는데, 심근경색이 온 환자 중에서는 적절한 약물 치료에도 심구혈률(EF)이 30% 이내의 환자, 심구혈률(EF)이 31~35% 로 일상생활에도 호흡곤란을 느끼는 환자(NYHA class II-III), 심구혈률이 40% 이내의 환자로 비지속성 심실 빈맥이 발생하는 환자에게 삽입할 수 있고, 위의 환자처럼 확장성 심근병증에 의한 심부전으로 3개월 이상의 적절한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호흡곤란을 보이는 심구혈률 35% 이하의 환자는 삽입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급사를 막지만 심부전 자체를 낫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젊은 환자들의 경우는 몸 안에 삽입에 대한 편견이 있어 의학적인 권고안을 따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잦다.
삽입형 제세동기 시술은 심도자실에서 행해지며 약 1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환자는 시술에 필요한 장비가 갖춰진 심도자실에서 심전도를 관찰하기 위한 전극 패치를 부착한 후, 시술 시 약물 투여나 탈수를 막기 위해 정맥 주사를 통해 수액을 공급한다. 보통 적게 쓰는 팔의 쇄골 아래에 기계를 삽입하며, 쇄골 아래를 5~7cm 절개하고, 피부밑에 제세동기를 넣을 주머니를 만든다. 그 후 정맥을 통해 전극선을 심장으로 삽입하게 된다. 시술 후 담당의의 조언에 따라 일상생활을 시작할 수 있으며, 처음 3개월간은 시술한 부위의 팔을 너무 당기거나 비틀지 않아야 하며, 시술 후 발열이나 짓무름 등이 발생하면 주치의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 심한 심부전 환자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최대한 환자 입장에서 어려움을 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제세동기를 하지 않고, 결국에는 급사하여 마음을 아프게 한 환자들도 있다.
환자는 삽입형 제세동기 시술 후 퇴원했으며, 이후 일과 가족들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몇 차례 쓰러졌는데, 다행히 제세동기가 잘 작동해 회복헸고, 이후로 호흡곤란이 심해져 심장 이식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으로 생각돼 심장 이식을 대기하였고, 오랫동안 대기했다가 적합한 뇌사자가 발생해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필자가 미국 연수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심장 이식을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연수를 늦춰야 하나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마음을 졸이던 환자였는데 다행히 연수 전 이식을 마치고 퇴원해 기쁜 마음이었다.
처음 환자가 심 기능이 좋아졌을 때 잘 유지하였다면 이식까지 가지도 않았을 텐데… 중간에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들과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 분이라 주치의로서 애착이 가는 환자다. 사주에서 본인은 죽을 운명인데 현대 의학 그리고 과장님이 살렸다며 농담하시는 환자분께, 진작에 이야기를 잘 듣고, 병원에 다녔으면 이 고생을 안 하셨을 텐데, 이식 후에도 약 잘 드시고, 문제 있을 경우 혼자 앓지 말고 연락 하시도록 외래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그래도 외래 문을 나서는 환자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심장 이식을 한 환자를 잘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착한 배우자를 만나기를 바라며, 심장을 주신 공여자를 대신해서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