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앨범 속 사진의 모습들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의정부고등학교의 학생들의 패러디가 가미된 졸업 사진 촬영이 화제가 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선 ‘특이한’ 콘셉트의 졸업앨범 촬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
해를 거듭할수록 의상과 소품의 퀄리티는 높아졌다. 일명 ‘코스프레’ 촬영에 가담하는 이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정직한 미소를 띠던 이전의 졸업 사진과는 달리 앨범 속 학생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드레스를 입거나 단체복을 맞춰 입고 포즈를 취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잡지사의 화보 촬영 현장을 방불케 한다.
"추억 만들기에 최고"…'디즈니 공주' 의상 맞춰 입고 촬영
고3인 김가은(19·여) 씨는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인 '프린세스(공주)’를 콘셉트로 촬영을 진행했다.
김씨는 고등학교 생활의 3분의 2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등교 자체가 어려워지자 김씨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김씨는 “졸업 사진 찍기가 고등학생 때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일 것이라 생각했다”며 “두고두고 기억이 날 만큼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디즈니 공주 코스프레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김효진(19·여)씨 역시 친구들과 함께 디즈니 공주들의 옷을 맞춰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어디든 (졸업 사진 촬영 시즌인) 지금 최고 유행은 디즈니 공주”라며 “나와 친구들도 인스타그램을 보고 콘셉트를 정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졸업앨범컨셉’, ‘졸업앨범의상’을 검색하면 인기 게시물 등에서 디즈니 칠공주(백설공주·신데렐라·오로라·에리얼·벨·자스민·포카혼타스) 등을 콘셉트로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다.
칠공주뿐만 아니라 한복, 치파오 등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코스프레하기도 한다. 모두 의상부터 헤어 메이크업, 소품까지 실제 캐릭터와 비슷하게 따라한다.
'소품'도 신경 써요…의상대여업체도 '호황'
지은씨는 의상뿐만 아니라 앨리스가 들고 있는 라탄바구니까지 재현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온·오프라인 소품샵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그는 “이왕 찍는 거 완벽하게 찍고 싶었다”며 “영화 속 앨리스가 갖고 있는 바구니처럼 뚜껑이 두 개인 걸 찾으려고 집 근처 쇼핑몰부터 오픈마켓까지 모두 뒤져봤다”며 “찾기가 힘들었지만 고된 만큼 촬영을 준비한 시간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교사 최모씨는 "학교 차원에서 교지에 실을 '졸업사진 콘테스트'를 연다"며 "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은 선물도 받을 수 있어 학생들이 매우 진지하게 참여한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고3 학생들이 하루를 '반짝'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때가 바로 졸업 사진을 촬영하는 날"이라며 "각 조마다 의미 있는 콘셉트를 정하고 소품 등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참여한다. 교사 입장에서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촬영을 즐기는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의상과 소품 등을 구매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소품을 제외한 의상의 가격만 한 벌에 3만원을 호가한다. 1회 촬영을 위해 지출하기에는 큰 돈이다.
이에 따라 이런 수고와 의상 구매 비용의 부담을 줄여주는 촬영용 의상 대여 업체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에 코스프레를 즐기던 소수나 촬영 현장에 의상을 대여하던 업체가 호황을 맞기도 하고 학생들의 니즈를 파악해 인기있는 제품들을 집중해 들여놓는 업체가 새로 등장하기도 했다.
정호진 바비네코스튬 대표는 "최근 2~3년 새 본격적으로 (졸업 사진 촬영 시) 코스프레가 유행한 것 같다"며 "여러 의상들 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의상은 '드레스'"라고 설명했다.
콘셉트 내세워 과도한 신체 노출도…사전 제재 필요해
그러나 욕심이 과한 나머지 신체를 과하게 노출하는 등 사진의 수위가 높아지기도 한다. 평생 남을 사진이라는 생각에 자극적인 의상을 입기도 하는 것.
졸업을 하면 성인이 되지만 사진 촬영 당시는 여전히 '10대'라는 점에서 노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지은씨는 “졸업앨범 촬영 당시 한 팀은 ‘여름 바캉스’를 콘셉트로 정해다”며 “래시가드를 맞춰 입고 소품과 함께 촬영했는데 한 명이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고 찍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지원(19·여) 씨는 “우리 학교에서는 동물 머리띠에 짧은 치마와 가터벨트를 입어 선생님께 혼이 난 학생이 있다”며 “인스타그램을 봐도 이따금 수위가 높은 사진들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졸업사진의 결과물이나 촬영 준비 과정을 담은 사진들 중에는 소위 말해 ‘핼러윈 이태원’을 방불케 하는 것들도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신체를 노출하거나 경찰이나 간호사, 승무원 등 특정 직업을 성적 대상화 하는 의상을 입기도 한다.
이씨는 “수위가 너무 높으면 선생님들이 제재하거나 주변 친구들에게 비난을 듣기도 한다”며 “다만 판단 기준이 모호해서 학생들이 알아서 적정선을 지키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 교사는 "대다수의 학교에서 촬영 전에 조와 콘셉트를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 안다"며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컨셉을 정하거나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경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경우 (학교 입장에서는) 해당 학생들의 사진을 앨범에 싣는 것이 매우 난감하다"며 "학생 개인이 졸업사진을 재촬영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통보하는 등 강한 조처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스냅타임 김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