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리먼 3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美 부양책 부작용..위기 잔재도 남아
유럽, `2차 리먼사태` 발발 우려..불안한 금융권
  • 등록 2011-09-13 오전 11:15:00

    수정 2011-09-14 오전 9:30:20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미국 거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어느새 3년을 맞았다.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계기로 발생한 이 사태는 금융시장과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주며 세계인들을 트라우마에 빠지게 했다.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긴 듯 보였지만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위기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떠오른 유럽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되살아나는가 했던 미국 경기는 또다시 후퇴 일로다. 금융 시스템이 불안하기도 매 한가지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책 결정자들의 손에 남은 카드도 별로 없다. 또 다시 대형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유다.

◇ 부양으로 빚 더 늘어난 美..성장세는 여전히 정체  
지난달 5일 미국은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을 강등당하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미 정부는 금융위기 당시 직격탄을 맞은 금융회사들과 기업, 가계를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필요한 돈은 국채를 찍어 마련했다.

이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막대한 부채를 남겼다. 극심한 진통 끝에 가까스로 부채한도를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내걸린 긴축안의 달성 여부는 불확실하다. 자칫 빚만 더 불어나 재정이 파탄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 제조업과 소비 등 각종 경제지표엔 빨간불이 켜졌다. 전문가들은 잇달아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미 정부로선 대규모 부양책을 또 쓰자니 부채가 늘어나는 게 걱정이고, 내버려두자니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질까 우려스럽다. 이 때문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언한 부양책들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2년 만에 4500억달러에 가까운 대규모 부양책을 발표해야만 했다. 

미 금융권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리먼 사태 이전에 이뤄진 모기지 증권 부실 판매 여파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최근 미 당국은 17개 대형 은행들을 상대로 2000억달러에 가까운 모기지 증권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일각에선 은행권의 손해배상액이 최대 120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하고 있다. 이게 현실화되면 가뜩이나 실적 부진과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은행들이 우후죽순처럼 쓰러질 수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말처럼 세계 경제에 미국발(發)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 유럽, `2차 위기의 공포`..답이 안 보인다  
▲ 2005년 이후 유로존 은행권 채권 발행 추이. 분홍색이 순 발행규모로, 작년부터 발행이 급감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단위:십억유로. 출처:FT)
현 상황에서 위기의 징후가 더 짙은 곳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다. 지난해 초 남유럽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이제 최대 경제국 독일을 제외한 거의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수장들이 모두 매달려 위기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탐탁지 않다.

리먼 사태 때 유동성 부족을 여실히 체험한 유럽 은행권은 시중에 풀어둔 돈을 긴급히 회수하는 한편 대출을 줄이고 있다. 대신 안전한 유럽중앙은행(ECB)에 돈을 대거 맡기는 모습이다. 리먼 사태 당시 나타났던 신용경색의 전조와 비슷하다. 프랑스 출신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앞장서서 유로존 은행권의 자본 확충이 시급하다고 경고한 것은 그만큼 유럽 은행권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유럽 은행권이 재정 불량국 국채에 물린 자금도 적잖은 변수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경제국 대형은행들은 재정위기의 덫에 걸린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 그중 위기 정도가 가장 심각한 그리스가 근시일 내에 국가 부도에 처할 경우 은행권이 갖고 있는 그리스 채권은 휴짓조각으로 변하게 된다. 이는 주변 재정불량국의 연쇄 부도와 동시에 은행권의 연쇄 파산으로도 이어져 글로벌 금융시장에 태풍으로 작용할 수 있어 더 큰 문제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이런 세간의 우려를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며 시중 은행권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말을 온전히 믿어주기에 유럽이 처한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리먼 사태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실상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한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셈이란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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