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포스코의 성공의 기반을 마련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우향우' 발언은 한국 철강업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포스코의 성공에는 '불도저' TJ의 리더십이 있었다
박 명예회장에게 포스코의 성공은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기술도 자본도 전무한 상황에서 오로지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일궈야 했기에 그에게 실패는 곧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하는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건립하는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의 공기가 지연되자 사무직, 임원 할 것없이 공사현장에 투입해 공기를 단축시켰던 일화는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을 보여 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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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소 건립의 특명을 받은 그는 일본에서 공부했던 이력을 발판 삼아 일본 업체들과의 긴밀한 접촉을 시도한다.
일본철강연맹 이사장인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야와타제철 사장, 나가노 시게오(永野重雄) 후지제철 사장, 아카사카 다케 시(赤坂武) 일본강관 사장 등 철강업계 지도자들을 만나 포항제철소 건설에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었다.
박 명예회장의 이같은 노력 덕에 포스코(005490)는 일본 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은 물론, 신일철 등을 통해 기술을 이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곧 현재의 포스코를 존재하게 한 원동력이 됐음은 두말할나위 없다.
이 밖에도 박 명예회장과 관련된 일화들은 많다. 지난 69년 당시 IBRD 실무자로서 한국의 일관제철소 건설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던 자페 (J.Jaffe)와 인연도 유명하다.
또 지난 78년 당시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은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당시 신일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대답을 들었던 일도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이구택 회장,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글로벌 포스코 이끈다
이구택 회장은 포스코(옛 포항제철) 공채 1기 출신. 일찌감치 박 명예회장으로부터 "미래의 CEO감"으로 평가 받았던 그는 '불도저'가 닦은 기반 위에 꽃을 피운 CEO로 평가 받고 있다.
평소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회장은 일에서 만큼은 박 명예회장 못지 않게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특히 자신과 의견이 다른 경우, 끝까지 논리적으로 설득해 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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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포스코 발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78년 미국 휴스턴 지사 근무를 시작으로 80년 귀국과 함께 수출부를 지원,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중인 포스코의 미래를 설계했다.
2000년 포철이 민영화기업으로 거듭나고 2002년 회사명을 포스코로 바꾸는 등 숨가쁜 시간의 중심에도 언제나 이 회장이 있었다.
이 회장은 대표적인 '외유내강형' CEO로 통한다. 겉으로는 한없이 온화하지만 내부적인 일을 추진할 때에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고 밀어 붙이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까지 포스코 직원들의 명함에도 박혀있었던 포스코의 '6시그마 운동', 세계 철강역사에 유례 없는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 M&A가 아닌 설비투자를 통한 성장,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해외시장 공략 등 최근 포스코가 일군 많은 업적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최근 이 회장의 화두는 '글로벌'이다. 포스코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인도 일관제철소 준공과 베트남 제철소 준공도 모두 이 회장의 전략에 의한 것이다. 현재의 수준에 만족해서는 포스코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이 회장은 최근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성공신화 창출의 원년, 진정한 글로벌플레이어로서 초석을 놓는 원년을 만들어갑시다"고 밝혔다. 창립 40주년을 맞는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행보를 하겠다는 일성인 셈이다.
불도저의 저력과 그 위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는 포스코. 불혹의 나이에 또 다른 변신을 꾀하는 포스코에 세계 철강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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