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청부 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업가 허모(당시 63세) 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모(40) 씨를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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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와 허씨의 인연은 2012년 9월께 시작됐다. 신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허씨에게 필리핀 수빅의 카지노 에이전시 사업비 명목으로 5억원을 빌렸지만 도박으로 탕진했다. 신씨는 필리핀에서 도박자들에게 환전을 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업무를 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씨는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허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2014년 2월 10일 필리핀 청부업자인 A씨에게 강도로 위장해 허씨를 죽여달라고 청부했다. 대가로는 30만 페소(한화 약 750만원)를 제시했다.
신씨의 부탁을 받은 A씨는 암살자 B씨와 오토바이 운전사 C씨를 고용했고, 같은 달 18일 신씨는 살인을 위해 허씨를 필리핀으로 초청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등 환심을 샀다.
같은 날 오후 7시 45분(이하 현지시간) 허씨는 필리핀 앙헬레스의 한 호텔 인근 도로에서 일행 3명과 함께 있다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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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초기 허씨 일행으로부터 신씨가 허씨에게 거액의 빚을 진 점 등을 확인한 경찰은 신씨가 살인을 청부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현지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하지 못하고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경찰은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경찰관을 4차례 현지로 보내 경찰조사를 벌였고, 필리핀 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인 ‘코리아데스크’도 현지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탐문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신씨의 통역사 겸 운전기사인 필리핀인 E씨와 총기대여업자 F씨의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운전기사 E씨의 자백은 신씨의 범행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4000쪽이 넘는 수사 서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신씨가 청부살인 대기금을 전달한 시점에 원화를 페소로 환전한 내역, A씨 일당에게 보낸 허씨 사진 등 신씨를 압박할 증거를 보강했다.
신씨는 9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E씨와 F씨의 진술서와 환전내역 등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범행을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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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신씨 사건은 해외 청부살인 사건에서 현지인 정범이 검거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 교사범이 처벌되는 첫 사례다.
신씨와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도 “수사 단계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을 했고, 조력자들의 진술 등은 배경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치밀한 계획하게 여러 차례 시도를 거쳐 결국 피해자를 살해하도록 교사했고 범행을 감추려 강도로 위장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며 “피해자가 권총에 6발을 맞고 숨지는 등 수법도 잔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필리핀에서 필리핀 사람에 의해 범행이 실행돼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컸고, 사건 이후 4년간 유족에게 어떤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았다”며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와의 금전거래를 하면서 연 30%부터 월 20%에 이르는 고리의 채무를 부담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