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에 국가 배상 책임 첫 인정[그해 오늘]

2018년 2월 8일 서울고법, '국가의 미군 기지촌 성매매 책임' 첫 인정
"공무원, 성매매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 직접 교육했다"
1심선 '성병 감염 여성 격리 수용'만 불법 행위로 인정
2022년 대법원, 원심 유지...정부 책임 65년 만에 확정
  • 등록 2023-02-08 오전 12:03:00

    수정 2023-02-08 오전 12:03: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2018년 2월 8일 서울고등법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 위안부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정부는 원고 모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지난해 9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선고 판결 기자회견에서 원고인 김 모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뉴스1.
기지촌(基地村)이란 군대의 보급·수송·통신·항공 등의 기점이 되는 ‘기지’ 주변에 서비스업 중심의 생활권을 형성하는 군사 취락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지촌이라고 하면 해방 후 국내에 주둔한 미군 부대 근처에 생긴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미군의 외출과 외박이 허용된 1957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번창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지촌엔 주둔 군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유흥업소가 활성화됐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외국인 남성을 상대하는 더러운 여성이라며 ‘양공주’라고 비아냥거렸다. 국내에서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 문제가 꾸준히 회자되며 그 실상이 밝혀지기 시작하자 미군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종사했던 여성들의 인권 문제도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4년 시민단체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은 1957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내 각 지역에 소재한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미군 상대 성매매에 이용됐던 여성들 122명을 대리해 국가 상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해 성매매를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2017년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는 정부가 기지촌을 설치하고 환경 개선 정책 등을 시행한 것은 원고에 대한 불법 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인의 성매매업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고양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다만 정부가 성병 감염자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마련되기 전에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격리 수용한 부분은 불법 행위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성병 감염인에 대한 격리 수용 규정이 시행된 1977년 8월 이전 격리 수용된 여성 57명에 대해서만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하지만 2심은 달랐다. 대한민국이 ‘군사 동맹·외화 획득’을 위해 미군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조장했다고 인정했다. 2018년 2월 8일 서울고법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74명의 피해 여성에 대해 국가가 각 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1심과 달리 전염병 예방법 시행 규칙 시행 이후에 격리된 여성들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피해 여성 43명에게 각 3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정부의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성매매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담당 공무원 등은 자치 조직을 통해 기지촌 위안부에게 이른바 ‘애국 교육’을 실시해 성매매 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을 직접 교육했다”며 “국가는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한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가는 피해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 나아가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며 “피해 여성들은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심에서는 전염병 예방법 시행 규칙 시행 이전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며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시행 규칙이 시행된 이후에도 속칭 컨택(성병에 걸린 미군이 자신과 성매매한 여성을 지목하는 것)으로 격리 수용하거나 페니실린을 강제로 투약한 것 역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 ‘국가의 미군 기지촌 성매매 책임’을 처음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후 2022년 9월 대법원은 이모 씨 등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부분 고령인 피해자 중 일부가 숨지거나 소를 취하해 원고가 95명으로 줄었다. 이로써 군사 동맹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며 성매매를 조장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65년 만에 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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