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한주도 힘든데"…外人에겐 쉬웠던 공모주 단타

국내 기관 90% 이상이 가장 긴 6개월 제시
확약 건 해외 기관 적은데다 10곳 중 9곳이 1개월
개인 관심 높아진 상황 관행 개선 목소리 높아져
  • 등록 2021-05-31 오전 12:02:00

    수정 2021-05-31 오전 7:35:18

[이데일리 이지현 박태진 기자]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의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 형성 후 상한가)’ 불발에서 촉발된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의 기업공개(IPO) ‘먹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외국인에 대한 물량배정 관행을 두고 비난이 일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국내기관 96.4%가 일정 기간 공모주를 팔지 않겠다고 의무확약을 할 때 해외기관 63.4%는 확약을 걸지 않았다. 확약한 36.6% 대부분도 확약 기간을 1개월 이내로 걸었다. 그럼에도 해외 기관은 충분한 공모주 확보가 가능했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1주를 받기 위해 증권사 노상에서 밤을 새웠던 것과는 대비된다.

일각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공모주를 받을 경우 투자자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의무보유확약 현황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 SKIET 먹튀 이렇게 가능했다

30일 이데일리가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단독 확보한 SKIET 공모주 해외 기관투자자의 확약 비율은 36.6%에 불과했다. 63.4%는 아예 확약을 걸지 않았다.

수요예측때 일정 기간 팔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기관투자자에게는 공모주 물량을 더 많이 배정한다. 공모기업 입장에서는 기관에 물량을 한꺼번에 많이 주며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일정 기간 유통제한을 통해 상장 초기 주가 급락을 막으려는 안전조치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IET의 기관경쟁률은 1882.88대 1로 기관 경쟁률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의무보유 확약 비율도 63.20%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를 국내와 해외로 구분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국내기관 확약 비율만 96.4%로 해외 기관의 낮은 확약비율이 전체 확약 평균을 낮춘 셈이다.

특히 SKIET는 JP모간증권, 크레디트스위스(CS)를 대표 주관사와 공동주관사로 참여시키며 전체 배정물량(2139만주)의 44%에 해당하는 941만주를 외국계 증권사에 배정했다. 이들은 일반청약을 받지 않고 해외법인 등의 청약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다른 공모주보다 상대적으로 해외기관투자 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의무보유확약을 걸지 않은 외국인이 초반 매물을 던지면서 수급에 부담을 줬다. 상장 첫날부터 28일까지 13거래일 동안 단 4거래일을 제외하고 ‘팔자’ 행진을 해왔다. 누적 매도 규모만 4653억원에 이른다. 개인이 4126억원을 담았음에도 주가하락 막지 못했던 이유다. 특히 첫날 매도 규모만 3616억원이나 됐다.

이같은 상황은 SKIET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0년 상장한 시총 상위 10개사의 IPO 배정물량’ 자료를 보면 외국인의 의무확약 보유비율은 평균 4.64%에 불과했다. SK바이오팜(326030)의 경우 외국인 배정물량은 전체의 31%였지만, 의무보유확약을 내건 외국인의 비율은 0%였다.

다수의 IPO를 추진해온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가가 높은) 규모가 큰 거래의 경우 국내에서 소화하기 어려울 수 있어 해외 세일즈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경우 대부분이 (해외) 법인 영업실을 통해 들어오는데 네트워크가 있는 상태에서 사전 미팅하고 오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들어오는 기관투자자들은 보통 국내 기관투자자들과의 경쟁이 아닌 별도의 물량을 따로 책정, 배분한다. 기관배정도 공정한 경쟁이 아닌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해외 영업을 해야 해서 해외 기관에 더 잘해준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며 “영업 유치해야 하는 건 국내기관도 똑같기 때문에 해외 기관에 별도 물량을 책정해 주는 건 문제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IPO 추진 기업도 해외 기관의 별도 배분을 마다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계 자본 유치를 통한 글로벌 흥행을 기대하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때문에 외국계 증권사를 IPO 주관사로 참여시키는 경우도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차기 IPO 대어로 꼽히는 크래프톤도 상장 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006800), NH투자증권(005940) 외에 크레디트스위스(CS), 씨티글로벌마켓증권, JP모건을 선정했다. 신규상장을 추진 중인 카카오페는 삼성증권(016360) 외에 JP모건증권과 골드만삭스증권을, 카카오뱅크는 KB증권과 CS증권을 청약 주관사로 선정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 기관 투자자의 먹튀 논란이 있더라도) 이후 IPO룰 추진하는 기업들이 (해외 기관 별도 배분 등과 같은) 경향을 당장 바꾸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 근거 투명화 필요하지만…“시장 맡겨야”

금융시민단체에서는 해외기관 확약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국내 기관과 해외 기관 간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며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해외 기관의 확약 비중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PO 기업은 금융감독원에 증권발행실적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 금감원 공시 서식 작성 기준을 활용한다. 현재 기관투자자 의무보유확약기간별 배정현황 등은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기관뿐만 아니라 해외 기관 배정현황이 모두 포함돼 일반투자자들은 외국계 비중을 알기 어려운 구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금감원의 공식 서식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득의 대표는 “투자판단 근거가 되는 보고서임에도 큰 변수가 되고 있는 해외 기관의 배정 현황은 찾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해외 기관의 IPO 진입 장벽이 낮다면 이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공개돼야 하는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국계만 별도로 추가 정보를 요구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런 부분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배정물량 조정이나 보유확약 강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득의 대표는 “국내기관과 해외 기관 간에 불평등이 없도록 일정수준 이상의 주식 확보 시 3분의 2 정도는 확약을 거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한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공모가가 고평가된 게 문제이지, 해외 기관의 확약 문제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모가가 고가에 형성된 건 투자자들의 매수·매도 과정을 거치면서 적정가격을 찾아가는 게 시장원리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밸류가 비싼 건 공모가 밑으로 빠질 수도 있고, 공모가가 저렴한 건 30~50% 올라가는 게 맞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공모주 시장이 적정가를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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