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나이를 알아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나이, 지위, 경력 등에서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갑이 아니라면 친구가 될 수 없고, 한쪽은 상대를 높이고 한쪽은 상대를 낮춰야 한다. 나이는 호칭뿐 아니라 존대어를 쓸지 평어를 쓸지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열 정리’는 어렵고 예민하다. 이것은 고유한 전통일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SBS 스페셜’ 14일 방송은 한국인의 상하를 나누는 언어습관, 호칭을 기반으로 한국 문화를 조명한다.
방송은 나이 관습과 관련된 사례를 소개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이를 묻지 않고 무조건 반말로 대화해야 하는 규칙이 있는 수평어 모임이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많아지고 있다. 취미 모임 어플을 통해 수평어 모임을 주도한 이요셉 씨는 다섯 살 아래의 강성수 씨를 친구라 생각하고 있고, 일 년 반 사이에 약 70번의 모임을 통해 1300여 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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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반 지도교사를 하면서 학생들과 평어 사용을 시도한 결과, 방송반 내의 고질적인 선후배 간 군기 잡기와 폭언 등은 완전히 사라졌고 학생들과 선생님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교사와 학생이 서로 평어를 사용하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학교 안팎에 있어 이 선생님의 고민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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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씨는 호칭 때문에 원래 격의 없이 지냈던 시동생과도 거리가 생겼고, 최근 시동생이 결혼하면서는 동서와의 관계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그녀는 관계를 가로막는 호칭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따라야 하는 건지 의문이라고 한다.
또 전통적인 관습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성과 한음의 우정으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도 다섯 살 나이 차가 있고 이른바 ‘북학파’를 이룬 조선 말기 실학자 박지원은 홍대용보다 여섯 살 아래, 박제가보다는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지만, 서로를 벗이라 부르며 교류했다.
SBS스페셜에 출연한 현대교육사를 연구한 서울교대 오성철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초대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가 1886년에 시행한 ‘사범학교령’이 그 시작이었고 그것을 거의 그대로 복제한 해방 후 정부의 교육정책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호칭을 단순하게 바꾸고 말의 지나친 높낮이를 없앨 수 있다면 더 수평적인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지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