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진희 기자] 한미약품(128940)의 기술수출 성공비결은 수요가 많은 신약 시장에서 차별화된 기술로 승부를 걸었다는 데 있다. 1973년 6월 15일 한미약품의 모태인 임성기제약회사를 창업했던 고(故) 임성기 회장의 “우리 손으로 ‘더 좋은 의약품’을 개발하자”라는 경영철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경영철학은 더 좋은 의약품에 방점이 찍혔다. 최근 대부분 바이오 기업들이 한 번에 신약개발로 ‘대박’을 치려는 욕심보다는 후발주자로서 가능할 일부터 찾았다. 복제약부터 시작해 합성신약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원천기술 확보까지 차근차근 이뤄냈다. 원천기술 확보 이후에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협업 대상자를 찾았다. 오늘날 한미약품이 기술수출의 명가로 자리 잡은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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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 파이프라인 타깃 시장 5000억 달러 이상
임 창업회장을 비롯한 한미약품의 경영진은 수요가 큰 시장에 집중해 파이프라인을 키워왔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이 회사의 파이프라인은 총 28개다. 이 가운데 21개가 글로벌 시장에서 수요가 큰 비만·대사(6개)와 항암 관련 치료제(15개)다.
최근 들어 한미약품이 더욱 공드리고 있는 비만·대사 치료제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글로벌 바이오제약 산업 2024 프리뷰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30년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를 비롯한 비만치료제의 매출은 1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된다. 현실화되면 전체 바이오의약품 매출 순위 10위 안에 포함될 전망된다.
한미약품이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진행 중인 15개 파이프라인은 모두 비만·대사·항암 치료제다. 물론 한미약품은 수요는 작지만 개발 가치가 있는 희귀질환 파이프라인도 보유하고 있다. 파프리병, 단장 증후군,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등 총 6개 파이프라인이다. 다만 이들 파이프라인 중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개시한 것은 아직 없다. 시장이 작은만큼 함께할 파트너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최인영 한미약품 R&D센터 센터장(전무)은 “1조원 이상이 투여되며, 개발기간이 평균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신약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경영진의 의지가 가장 컸다”며 “특히 임 창업회장은 글로벌 제약·바이오사의 틈바구니에서 차별화된 기술수출 전략으로 생존의 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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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도 국내 으뜸...기술수출 다음 바라본다
후발주자로서 적절한 전략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오늘날 한미약품이 있게 한 원동력이다. 한미약품의 기술개발을 위한 인프라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기준 한미사이언스(008930)와 한미약품 등 한미그룹 전체 임직원 중 20% 넘게 연구개발(R&D)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R&D 인력은 박사 84명, 석사 312명을 포함해 600여명에 이른다.
노영수 한미약품 ONCO임상팀 이사는 “기술수출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를 이끌어온 한미약품은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며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진 만큼 궁극적인 목표인 블록버스터 신약의 개발에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 3상 승인 후 2개월여 만에 첫 환자 등록까지 끝낸 한국인 맞춤형 GLP-1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유력한 후보 중 하나다. 이밖에도 대사질환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개발중인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미국 MSD가 글로벌 2b상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같은 적응증으로 개발한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 역시 글로벌 임상 2상에 진입했다.
성장의 근간인 기술수출에도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유망한 것은 항암 파이프라인이다. 북경한미약품이 공동개발하는 PD-L1과 4-1BB 동시 표적 이중항체 면역항암제‘BH3120’, 단백질(제스트 동족체 1/2) 2개를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 저해제 ‘HM97662’, 인터루킨-2 유도체 ‘HM16390’, 암 유발 돌연변이를 표적하는 ‘HM99462’ 등이다.
한미약품의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각각 1조 4909억원과 2207억원, 1593억원이었다. 한미약품이 본격적으로 기술수출을 시작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거둔 기술료수익은 총 7312억원으로 집계된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상위 10위 내 꾸준히 포함되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최 센터장은 “현재 보유한 전 임상 단계 있거나 초기 개발단계에 있는 파이프라인들도 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며 “본분에 충실해 한국의 제약·바이오 굴기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