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직업 잃었다"...희대의 '성기 노출' 사건 [그해 오늘]

  • 등록 2023-07-30 오전 12:05:00

    수정 2023-07-30 오전 12:05:00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그 방송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었다”

2005년 7월 30일 일어난 ‘희대의 방송사고’를 떠올린 권재영 KBS PD의 말이다. 권 PD는 ‘불후의 명곡’, ‘뮤직뱅크’ 등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권 PD는 지난 5월 15일 유튜브 채널 ‘권 PD의 아름다운 구설’에서 이같이 말하며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몇십 명이 직업을 잃는다. 그 중 한 사람이 제 아내다. 당시 ‘음악캠프’ 메인 작가가 아내였다. 제가 집에 있었는데 아내한테 ‘X됐다’고 문자가 왔다”고 전했다.

이어 “사고 직후 제작진이 무대로 뛰어 올라가 그들을 끌어내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둔 뒤 경찰에 신고했다. 범죄이기 때문”이라며 “경찰이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뿐 아니라 담당 PD와 작가까지 참고인으로 연행했다. 경찰은 혹시라도 제작진과 사전 모의가 있었는지 조사했다”고 덧붙였다.

권 PD는 “당사자들은 마약 조사까지 받았는데 모두 음성이 나왔다”며 “맨정신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게 더 놀랍다”고 말했다.

‘그해 오늘’ 오후 MBC 생방송 음악캠프 무대에 인디밴드 럭스와 오른 또 다른 인디밴드 카우치의 멤버 신모(당시 28세) 씨, 스파이키 브랫츠 멤버 오모(당시 20세) 씨가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한 채, 그야말로 날뛰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2005년 7월 30일 MBC ‘생방송 음악캠프’ 무대에 올라 알몸을 노출한 인디밴드 카우치 멤버 신모 씨와 스파이키 브랫츠 멤버 오모 씨가 같은 해 8월 5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 PD는 “음악캠프 주 시청자층이 10대 청소년들인 프로그램이라 시청자들이 받았던 충격이 훨씬 컸다”며 “객석에 앉아 있던 청소년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MC 화면으로 넘어갔는데, 당시 MC였던 (그룹 코요테 멤버) 신지도 손을 덜덜 떨며 진행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MBC는 신 씨와 오 씨에 대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두 사람에게 함께 무대에 올라 달라고 부탁한 럭스 리더 원모 씨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신 씨와 오 씨는 경찰 조사에서 “공연 전 미리 공모했고 그냥 재미 삼아, 장난삼아 옷을 벗었다”고 말했다.

구속돼 재판을 받던 두 사람은 같은 해 9월 27일 업무방해와 공연음란죄가 모두 인정돼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재판부는 “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리고 방송 관계자들에게 현실적, 재산적 피해를 준 점을 고려하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들은 방송에서 음란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공연음란은 주관적 흥분 혹은 만족까지를 요구하지 않고 노출 부위와 일시 장소를 감안하면 객관적 음란행위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젊은 나이의 혈기에 범행을 저지른 점, 상당기간 구금돼 반성할 기회가 있었고 업무방해를 해야겠다는 구체적 목적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는 점, 범죄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석방됐지만 대중음악계와 방송계에 미치는 파장은 길었다.

권 PD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디밴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10년 이상 퇴보했다며 “인디밴드는 사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인디밴드 활성화 차원에서 매주 한 팀씩 소개한다는 선의를 가졌던 음악캠프도 바로 막을 내려야 했고, 공중파 방송 3사의 생방송 시스템 전체도 바뀌었다.

권 PD는 “그 이후 지상파 3사가 동시 생방송을 하지 않는다. 5~10초, 많게는 5분가량 딜레이(지연) 방송을 원칙으로 하게 됐다”며 “주조정실에선 혹시 모를 사고가 발생하면 내보낼 여분의 화면을 상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방송사고’라기보다는 신 씨와 오 씨가 벌인 ‘성기 노출 사건’이 더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권 PD 역시 사회적 파장에 비해 “이들(신 씨와 오 씨)이 받은 형량은 경미했다”라면서 씁쓸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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