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아동이 자라서 학대부모 살해..'서울대 못간 게 잘못'[그해 오늘]

2000년 5월21일 부모 살해·사체훼손·유기한 이은석씨
패륜범죄 지탄받았지만 이면에 감춰진 아동학대 드러나
가족과 지인 선처 호소에..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돼 확정
  • 등록 2023-05-21 오전 12:03:00

    수정 2023-05-21 오전 12:03: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0년 5월21일. 경기 과천시에 있는 가정집에서 중년 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부부의 차남 이은석씨. 존속살해 자체가 패륜이지만, 범행 수법이 가족 사이에 벌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참혹하고 잔혹했다.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까지 한 것이다. 이씨의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은석씨.
이씨는 1976년 유복한 가정에서 2남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군장교 출신이었고, 모친도 이화여대를 나온 모두 엘리트였다. 그런데 부부의 양육과 훈육 방식은 엘리트 방식이 아니었다. 이씨의 학습이 더디고 행동이 굼뜰 때마다 어김없이 언어와 신체적 폭력이 가해졌다. 학대였다.

유치원부터 시작된 학대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이씨는 대인기피증세를 보였고 학교생활도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렸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씨는 뛰어난 학업 능력은 보여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돌아온 건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느냐’는 부부의 냉대였다.

대학 생활도 순탄지 못했다. 병역을 마치고자 입대한 군에서도 소극적인 성격으로 고생했다. 부모는 이씨가 복무하는 3년 기간 동안 면회를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무사히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부모의 인격 모독성 폭언은 계속됐다.

사건 발생 열흘 전이었다. 이씨는 모친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간 순종했던 이씨가 부모에게 난생 처음으로 맞서는 순간이었다. 가출에 가까운 독립을 선언한 형에게 부부가 아파트를 장만해준 데 대한 서운함에서 시작한 언쟁은 과거 자신에게 행해진 학대로까지 번졌다. 모친은 지난 일을 꺼내드냐면서 뭐라고 했고, 이후 이씨와 모친의 언쟁을 전해들은 부친은 이씨를 나무랐다.

부모와 대화로써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한 이씨는 절망에 빠졌다. 그날 이후 방문을 걸어잠그고 두문불출했다. 결국 이씨는 부모를 살해하고 훼손해서 유기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씨의 형은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이씨가 다닌 성당의 신자들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형량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확정됐다. 현재 이씨는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이씨는 존속살해 가해자이자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사건이 터지고 사회의 공분은 전자에 집중돼 가혹한 시선을 보냈지만, 이후 후자를 따져보려는 움직임이 뒤따랐다. 심리학자 이훈구 박사(전 연세대 교수)가 이씨를 면담하고 펴낸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책 제목은 이씨가 경찰조사에서 한 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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