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M&A(인수합병) 시장에서도 어쩌면 이 말은 유효하다. 원하는 매물 인수를 위해 경쟁자보다 더 높은 금액 제시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버페이’ 내지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남들만큼 금액을 적고 남들 수준의 인수 전략을 펼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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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큰 규모의 M&A로 관심을 끌었던 메디트 인수전은 합리적 판단과 원하는 결과 도출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우선협상대상자에 올랐던 미국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운용사(PEF)인 칼라일 그룹과 GS(078930) 컨소시엄의 최종 인수 계약이 결렬된 틈을 놓치지 않고, MBK파트너스가 잠정 새 주인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난달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GS측은 공시를 통해 “메디트 지분 취득과 관련해 당사를 포함한 컨소시엄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현재는 우선협상기간이 종료됐다”며 “본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지속하고 있으며 최종 인수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GS-칼라일 컨소시엄은 여타 원매자들이 제시한 2조원대 초중반대 가격보다 높은 약 3조원의 가격을 써내면서 우선협상대상자에 올랐다. 칼라일이 전체 자금의 90%를 대고 GS가 10% 수준을 책임지는 것으로 자금 계획을 짰다.
여러 의미를 내포하는 공시에서 GS-칼라일 컨소시엄이 협상 지속 의지를 시사한 점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여타 후보들의 움직임을 보고 최종 가격대를 재설정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GS-칼라일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내려놓으면서까지 시장 분위기를 좀 더 보겠다고 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로부터 3주가 채 되지 않아 메디트는 MBK파트너스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가격도 당초 알려진 3조원이 아닌 2조원대 중후반으로 알려졌다. GS-칼라일 컨소시엄 입장에서는 가격을 낮추는 데는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그 수혜를 가져가는 데는 실패했다. 물론 우선협상대상자 종료 이후 GS-칼라일 컨소시엄이 메디트 인수 의지를 접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노리던 시장 가격에 재도전을 노리던 상황이었다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연출됐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합리적 결정이 불러온 기회상실
일련의 전개를 보며 ‘합리를 따지면 3등 밖에 못한다’는 프리드먼 사장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가격 부담을 줄이고자 감행했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종료는 결과적으로 다른 원매자에게 할인만 제공한 셈이 됐다.
실제로 업계 안팎에서는 MBK의 빠른 의사 결정이 인수전 승기를 잡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도 있다. 2조원을 훌쩍 웃도는 거래임에도 빠르게 의견을 모으는, 누군가에게는 비합리적(?)일지 모르는 판단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오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칫 장기전으로 가나 싶었던 메디트 인수전은 빠르게 새 주인을 찾았다.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MBK파트너스의 메디트 인수 과정에서 또 어떤 변수가 찾아올지 모른다. 다만 ‘매각 재수’ 과정을 밟고 있는 유니슨캐피탈이나 속도감 있는 결정을 내린 MBK 모두 협상 완주에 대한 의지가 높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메디트 인수를 주도했던 GS-칼라일 컨소시엄 관계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러가지를 따져보니 저 가격에 살 거였으면 차라리 안 사는 게 났다’며 안도하고 있을까, 아니면 낮아진 가격에 새 주인을 찾은 상황을 보며 속쓰려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기적과 같은 재탈환의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합리를 따지니 기회는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 단위 M&A가 없던 일이 될 처지에 놓이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업무에 임했던 GS-칼라일 컨소시엄 관계자들의 노고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결과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이 업계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