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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마다 일본산 제품 의존 절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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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웨이퍼는 실리콘(규소)을 슬라이스한 것으로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반도체의 핵심 소재이다. 실리콘 웨이퍼의 순도는 99.999999999%이상이며 실리콘 웨이퍼를 잠실야구장 정도의 크기로 확대하더라도 고저 차가 머리카락 한 올 차이에 그칠 정도로 높이가 균일해야 한다.
실리콘 웨이퍼는 일본의 신에츠화학공업과 섬코(SUMCO)가 세계 점유율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8년 기준 우리나라가 수입한 실리콘 웨이퍼에서 일본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2.8%이다.
절연성의 박막을 겹쳐 도포할 때 쓰이는 레지스트(감광제) 역시 JSR이나 도쿄오우카공업, 스미토모화학 등 일본 기업 제품이 2018년 기준 93.2%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레지스트를 웨이퍼에 균등하게 도포하는 장치 역시 일본 의존율이 98.7%이다. 레지스트 도포장치는 도쿄일렉트론이 세계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의 설계도’인 포토마스크는 블랭크 마스크(석영유리기판)에 크롬 등 차광막을 도포해 만든다. 포토마스크과 블랭크 마스크의 일본산 의존율은 2018년 기준 74.6%, 65.5%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때 빛을 조사하는 스테퍼(노광장치)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다. 스테퍼는 네덜란드계 기업인 ASML이 세계 최대 기업이지만 일본산 비율 역시 20.1%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드라이에칭 장치에서는 미국기업인 램 리서치와 일본의 도쿄 일렉트론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드라이에칭 장치의 일본 의존율은 38.0%에 불과하지만, 수입액은 30억 1623만달러로 규모가 큰 편이다.
질화막을 제거하는데 쓰이는 안산은 일본의 라사공업과 일본화학공업, 린카화학공업 등 일본 기업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의 인산에 대한 일본산 의존율은 95.9%에 달한다. 스프레이식 세정장치 역시 93.0%를 차지했다.
반도체칩을 습도나 먼지로부터 보호하는 패키징 공정에 쓰이는 에폭시수지 역시 일본산 의존율이 87.4%에 달한다. 스미토모 베이클라이트, 히타치 화성 등이 취급하고 있다. 웨이퍼에서 칩을 분리하는 다이싱 장치는 디스코나 도쿄 정밀 등 일본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자랑한다. 다이싱 장치가 2018년 기준 한국의 전체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7%였다.
脫일본화 진행될 것…반도체 강국 위기에 파고드는 경쟁사
닛케이는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연합을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2000년 일본이 반도체 산업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IHS마크잇에 따르면 2001년만 하더라도 매출 기준 세계 8위였던 삼성전자는 1위로 올라왔다. 순위권 조차 아니었던 SK하이닉스는 3위로 올라섰다. 반면 2위였던 도시바는 경영난에 빠졌고 반도체 사업부가 도시바메모리로 분리돼 8위권에 머물렀다.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10위권에 들었던 NEC(6위), 히타치제작소(10위)는 아예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반도체 산업이 무너진 가운데 갈 곳을 잃은 일본 반도체 소재·장치를 받아준 것이 한국기업이다. 닛케이는 “새로운 탑러너(Top runner)가 이웃나라에 나타나면서 일본 영업맨들의 ‘한국 참배’가 이어졌다”고 표현했다. 그 뒤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그 수혜를 입어온 것이 일본 반도체 소재·장치 산업이다. 2017년 기준 전체 반도체 장치 수출액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차지한다. 소재산업에서도 한국은 대만에 이어 제2위(16.8%)의 큰 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닛케이는 큰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일본 반도체 소재·장치 기업이 생산거점을 한국이나 제3국으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고품질 첨단 제품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한국은 일본산 제품이 다른 나라 제품보다 비싸더라도 기꺼이 값을 지불하는 큰 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반도체 소재는 일본산 제품에 비하면 수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단기간에 일본산 제품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굴기를 앞세우며 반도체 생산능력을 전 공정에서 육성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가 되는 광물자원 등도 풍부하며 특히 불화수소의 원재료인 형석은 세계 생산의 60%이 중국산이다. 한번 공급망이 자리잡으면 좀처럼 파고들기 어려운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의 분열은 중국기업에게는 틈을 파고 들 호재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반도체 산업 분석가인 마크 뉴먼은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개발하려고 하는 중국에만 이득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리튬 이온 전지에 활용되는 음극(흑연)은 2008년 90.8%였던 일본산 제품 비중이 2018년 12.8%까지 떨어졌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8.9%에서 79.8%로 올라갔다.
반도체산업의 절대 강자로서 또 한 번의 도약을 하려고 했던 우리나라 기업 역시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먹거리로서 비메모리과 파운드리(위탁생산)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를 위한 각종 자원을 집약해도 모자를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니엘 킴 맥쿼리 분석가는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수율이 가장 중요하기에 소재 공급업체를 바꾸는 걸 꺼려한다”며 “소재의 미세한 변화도 생산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경쟁사들은 맹공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일본이 극자외선(EUV)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를 수출 규제 대상에 올린 직후, EUV 공정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신입·경력 사원 3000명 이상 채용한다. 1987년 창사 이후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격차를 벌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점유율을 차지하는 인텔은 올해 인공지능(AI), 칩 디자인 관련 분야에 1억 17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인텔은 물론 마이크론, 브로드컴, 퀄컴 미국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로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으로 꼽히며 주가가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