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07일자 22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양효석 기자]
`아랍의 봄` 이후 독재자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을 비롯해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까지 모두 권좌에서 내려왔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는 사망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만 아직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를 압박하는 국제시회 분위기로 봐서는 그의 독재 종식도 멀지 않아 보인다. 민주화의 열망 속에서 나타난 아랍 독재자들의 운명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지난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남쪽에 위치한 토라 형무소. 삼엄한 경비 속에 헬리콥터 한 대가 내려 앉았다. 헬리콥터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울부짖었다. 방금전 재판에서 25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자신은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환자`라며 형무소에 들어가길 강력히 거부했다. 결국 그는 2시간 반 실랑이 끝에 형무소내 병동으로 이송됐다.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30년 철권통치가 비로소 심판받은 순간이다. 특히 토라 형무소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정적들을 탄압하는데 활용했던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1928년 태어나 1950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부터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돼 제4차 중동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1974년 공군원수로 임명됐다. 1975년에는 부통령으로 임명되면서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고, 1976년에는 당시 집권 여당인 국민민주당(NDP) 부의장, 1981년에는 의장에 올랐다. 같은해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자 권좌에 올랐다.
무바라크는 사다트의 암살로 쉽게 권력을 거머쥐어 정통성 문제가 늘 따라붙었다. 때문에 그는 전임 대통령을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친서방 외교정책을 펼쳤다. 아랍권 국가이면서도 미국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내부적으로는 정보기관을 동원해 정적을 감시하는 통치 모델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어 자신을 중심으로 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1981년부터 무려 30년 동안 비상계엄법을 연장해왔다. 정당 등록조건을 까다롭게 해 반대파를 무력화시켰고, 대통령 후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의회 지지를 얻도록 해 후보등록 자체를 힘들게 했다. 무바라크의 연임은 불보듯 뻔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야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을 탄압, 관련자들을 고문하고 살인까지 했다.
올해 나이 83세인 그는 30년 철권통치도 모자라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를 후계자로 내세우면서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다. 경제도 엉망이 됐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10%대에 달하고 국민의 절반가량이 하루 2달러 정도의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훗날 역사가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며 "자신은 조국과 이집트 국민을 위해 30년간 봉사했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결국 그는 지난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혁명 기간중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25년형은 사실상 종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