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정오쯤에 찾은 서울 용산의 선인상가는 `적막` 그 자체였다. 이곳은 컴퓨터 관련기기 판매점이 밀집한 상가다. 아무리 이른 오후라지만, 손님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주범은 HDD. 판매 직원들은 끝을 모르고 치솟는 HDD의 가격에 굉장히 민감해했다.
500기가바이트(GB) HDD를 사는데 5만원 정도 생각하고 왔다는 기자의 물음에 한 판매 직원은 "언제적 얘기를 해요"라며 핀잔을 줬다.
"원래 전에도 경기침체 때문에 손님이 한창 많을 때보다 절반 이상 줄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HDD 가격이 3배 오르면서 그나마 있던 손님들도 없어지다시피 했죠."
판매 직원들이 항상 입에 올리는 두 단어가 `태국`과 `홍수`였다. 선인상가 초입에 위치한 C사의 직원 A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태국 홍수 때문에 HDD 물량이 없어요. 하루에 2~3개 들어오는데, 그것마저도 잘 안 팔려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500GB HDD는 4만원대 중반에 살 수 있었다. 현재 가격은 12만원대 중반. 3배 가까이 올랐다. 전 세계 HDD 생산의 40%를 담당하던 태국이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선인상가 옆에 위치한 나진상가에서는 아예 손님의 발걸음을 찾을 수 없었다. `500GB HDD를 구한다`고 했더니, "12만원 밑으로는 힘들어요"라고 했다. "(가격 상승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년은 갈 것 같네요."
오히려 차세대 저장장치로 불리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주목받는 모습이었다. 한 판매점의 C실장은 "HDD 하위 부품업체들의 상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들었어요. 당장 내일부터 안 들어올 수도 있지요"라면서 "차라리 이 기회에 SSD를 한번 써보세요"라고 제안했다.
HDD는 자기 디스크에 저장하는 기계식 저장장치로 그만큼 부피가 크고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SSD는 플래시메모리를 기반으로 해 부피와 처리속도를 대폭 개선한 제품이다.
64GB SSD는 500GB HDD보다 불과 3~4만원 비쌌다. 1테라바이트(TB) HDD와 비슷한 가격이었다. SSD는 더 이상 고가의 제품이 아닌 듯 보였다. 또 다른 판매점 대표는 "지금 64GB SSD를 산 다음에 HDD의 가격이 안정되면 500GB 혹은 1테라바이트(TB) HDD를 구입해 용량을 보충하면 되죠"라고 했다.
조립PC업체 I사 한 관계자는 "가격이 더 오른다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부품 판매점의 물량도 우리같은 조립PC업체들이 다 소화하고 있죠. HDD를 구입하는 개인 소비자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또다른 업체 한 대표는 "삼성전자도 자체 생산한 HDD를 모두 내부에서 소화한다고 들었다"면서 "아무리 삼성전자라고 하지만, 내년 중반 이후에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실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PC 가격을 3~4% 올렸다.
기자는 그날 저녁 용산을 다시 한번 찾았다. 이른 오후에는 원래 손님들이 적다는 얘기가 많아서였는데, 그날 저녁 역시 크게 달라지진 않은 모습이었다. 한 판매 직원은 애써 태연한척 한마디 뱉었다. "태국 홍수의 파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날 용산 전자상가는 하나 둘 문을 닫을 때까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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