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윤경 국제부장] 지난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청문회증인으로 채택한지 석달도 넘어서였다. 증인으로 채택된 날 해외로 나갔던 조 회장이었다. 그는 "해고는 살인이다" "유보 현금이 이렇게 많은데 해고를 꼭 택해야 했느냐"는 국회의원들의 공격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시선을 아래로만 두고 있는 그에게 한 의원이 "뭘 보고 있느냐, 나를 보고 답하라"고 하자 자신의 시선이 쏠렸던 책상 위를 가리키며 "여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지만 사진기자들에 의해 청문회 답변 전략이 적힌 문건을 보는게 들통났다. 눈을 감았다 뜨고 심호흡 등 답변속도를 조절할 것,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어눌하게 답변할 것 등의 보기에도 당혹스런 지침이 담겨 있었다.
노사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본인이 어느모로 보나 도피성인 외유에 이어 커닝 페이퍼나 힐끔거리며 시간 때우기라니. 자리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럴 땐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나는 것도 용단이다 싶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다.
아랍 민주화의 열기는 결국 42년간 철옹성이었던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 반정부군은 이제 수도 트리폴리마저 장악했고, 카다피는 결사항전을 하면서 자신의 말처럼 `순교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지지해주는 베네수엘라 같은 곳으로 도망치든지 선택해야 할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떠나야 할 때를 판단하지 못해 아름답지 못하기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을 처참히 억누르고 있는 그는 국제사회의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그런 요청을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자리 보전에 급급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리비아 다음으론 시리아를 바라보고 있다. 오죽하면 비슷한 처지였다가 결국 퇴진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조언까지 하고 나섰다. 무바라크는 지난 2월 권좌에서 물러난 뒤 시민 혁명 기간 공권력을 동원해 수백명의 시민을 숨지게 한 것과 관련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기업의 리더, 나아가 국가의 리더라면 나서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책임감의 다른 말이다. 곤란한 일은 피하고 대세를 거부하고 자리에 연연할 때 그들은 더 이상 리더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기업의 중요한 존립 기반은 직원이며, 국민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기업은 왜 하는지,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한다면 결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