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골프]황 여사가 좋은 이유

  • 등록 2011-04-30 오전 9:25:25

    수정 2011-04-30 오전 9:25:25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김 여사는 황 여사가 좋다.

골프 잘 치는 황 여사, 한 달 30일 동안 매일 골프를 쳤다는 그녀는 자그마한 체구에 비거리가 길지 않지만 일명 ‘또박이 골프’로 필드를 평정하고 다닌다. 또박, 또박 페어웨이를 지키며 3온1퍼팅으로 파를 이어가는 실력자인 것이다.

그녀의 칩핑 실력은 환상이다. 로브웨지를 가지고 붕~ 띄워 치는 샷은 ‘저거 큰 거 아냐’하는 걱정을 사지만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셔’하며 비웃듯 홀 옆에 바짝 볼을 붙여 동반자들의 기를 죽인다.

김 여사처럼 길게 치는 골퍼들은 방향이 이리저리 난장을 치기도 하지만 황 여사의 공은 그냥 깃대로만 ‘앞으로 돌격’이다. 김 여사가 2온을 한 뒤 버디를 노리다가도 그린 밖에서 높이 띄워 올려 홀에 붙이면서 쉽게 파를 하거나 혹은 그대로 집어 넣어 버디를 낚는 황 여사 플레이를 본 뒤에는 기가 한풀 꺾이곤 한다.

일명 ‘3학년1반’의 전형인 황 여사는 내기 골프에서 동반자 약 올려 죽게 만드는 딱 그런 타입의 골퍼인 것이다. 내기를 하면 보통은 적어도 3분의2를 휩쓸어 가는 황 여사. 그 돈으로 집을 사라, 최근에 산 자동차 바퀴는 내가 산 거다 해가며 농담 섞은 타박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김 여사는 황 여사가 좋다.

로프트를 원래 만들어진 것보다 훨씬 더 세워 잡은 뒤 완전히 오른쪽을 보고 서서 휙하고 돌려 쳐서 드로우 샷을 만들어 내는 그녀의 특이한 골프 스윙이 재미있고, 앞쪽으로 좀 많이 숙여지는 특이한 퍼팅 스트로크도 신기하지만 젤 좋은 것은 언제나 그녀가 가볍다는 것이다.

체구가 작아서 그렇지 두둑하게 나온 배를 보면 몸무게가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늘 경쾌하다. 스윙할 때 묵직하게 시간을 묶어 발끝에 달아두지도 않고 이리저리 라인을 살피느라 동반자들을 지루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잘 안 맞으면 또 그냥 그런대로 웃으면서 다닌다. 시원시원, 막힘 없이 필드를 누빈다. 정말 골프를 좋아하는 골퍼라는 느낌이 그녀의 경쾌함에서 느껴진다.

그녀의 멘트도 쾌활하다. 한 토너먼트에서 일년에 한번 치기도 힘들 만큼 엄청난 스코어를 기록하며 무너진 뒤 ‘인간의 빤쓰(그녀의 발음은 아주 강했다)를 입고 어떻게 골프를 그렇게 치냐?’고 스스로를 힐책했을 때는 주변에 있던 모든 아줌마 골퍼들이 까르르 넘어갔다.

그렇다고 그녀가 골프를 대하는 태도도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매일 라운드를 하면서도 늘 깨끗한 장갑을 준비하고 공에 예쁘게 색칠을 하고 클럽을 정돈하는 정성도 그렇지만 클럽 선택이며 라인을 살필 때 자세는 말 그대로 고수다. 캐디에게 질문하되 모든 결정은 스스로 하고, 절대 미스 샷이나 비켜가는 퍼팅에 대해 캐디 탓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핀 위치가 표시된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스프링쿨러에 써 있는 거리와 비교하며 깃대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고 캐디가 말해주면 또 참고하여 스스로 클럽을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심각하지 않은 것이 황 여사의 장점 중 장점이었다. 워낙 잘 치지만 그녀라고 왜 더 잘 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황 여사가 스코어 때문에 심각해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티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공 잘 치는 사람이 잘 안 된다고 신경질을 부리면 혹시 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서 신경 쓰여 그랬나 싶어서 하수들, 아니 중간쯤 가는 실력자들도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황 여사는 백돌이, 백순이랑 골프를 쳐도 언제나 즐거워했다.

좋아하는 골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 그녀에게 있었다.

김 여사는 그런 황 여사가 오늘 너무나 그리웠다. 라스베거스 게임으로 라운드를 끝내고 락커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말 때문이다. 본전 9개홀 중 5개홀 밖에 건지지 못한 모 여사가 본전을 찾은 김 여사에게 ‘나는 김 여사랑은 같이 치면 안돼’하며 던진 말이었다. ‘내가 2개를 먹게 해줬는데 나랑 팀이 됐을 때 하나를 못 건져주냐!!’

허걱. 그런 걸 계산하고 골프를 친 것도 놀라웠고 내내 나 때문에 못 먹는다고 속으로 투덜거렸을 상황이 무서웠다. 캐디에게 성질 내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분위기 심각하게 만들더니 그게 다 내 욕이었단 말인가. 음. 하지만 우스웠던 것은 사실 오늘 폭탄은 모 여사였다는 것이다. 자기가 산통을 다 깨고 다녀놓고 어디다가 핑계를 대냔 말이다.

김 여사는 생각할수록 쾌활 그 자체인 황 여사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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