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골프)열정의 불똥

  • 등록 2009-11-03 오전 10:25:03

    수정 2009-11-03 오전 10:25:03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어디 어떻게 치는지 좀 보여주세요.”

그건 마치 `어디 이래도 실수 안 하나 보자` 하는 선전포고 같았다.
우연히 골프 행사에 참가하게 돼 생전 처음 보는 (아)줌마 골퍼와 라운드를 하게 되었고 그의 걸쭉한 부산사투리에 금방 친근감이 생겨 하하호호 즐겁게 라운드를 하던 중이었다.

화근을 따지자면 전 홀에서 칩인 버디를 낚을 뻔했던 데 있었다. 꽤나 긴 거리의 파4홀이어서 티 샷에 세컨 샷도 잘 맞았지만 볼은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 한 40야드쯤 됐던 서드 샷 지점에서 52도 웨지로 살짝 띄운 볼이 그린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굴렀다. 그리고 ‘어,어, 들어간다’하는 탄성이 쏟아지는 순간 볼이 홀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속으로는 에이구, 그냥 떨어질 것이지… 했지만 웃으며 ‘다 운이죠 뭐’하면서 볼을 집어 나왔다. 적당한 내숭이 필요한 자리였다.

그랬더니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냐’며 너스레를 한창 떨던 그 줌마 골퍼가 다음 파 3홀 티잉 그라운드부터 ‘어디 좀 봅시다’하며 스윙하는 바로 뒤에 서서 노골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사람 눈이라는 게 앞만 보고 있다 하더라도 좌우 90도씩 180도, 아니 적어도 150도 정도 안에 있는 사물은 감지할 수 있는 탁월한 기능을 가진 터라 자꾸만 공보다는 오른쪽에 서 있는 그 줌마 골퍼가 신경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것도 아니고 나름 최고 정확도를 자랑하던 8번 아이언 샷이 그만 오른쪽 러프로 볼을 날려 버리고 말았다. 볼이 경사면의 덤불 깊숙이 있어 그린을 바로 노릴 수 없었기 때문에 툭 쳐내 페어웨이로 나왔다. 잘 붙여서 보기를 하면 되지 뭐 하며 내려 서는데 예의 그 줌마 골퍼가 어느새 다시 뒤에 섰다. 이번에는 아예 팔짱을 끼고 ‘나 구경 왔네’ 했다. 부담 백만배다.

집중, 집중을 외치며 핀으로 공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파3홀에서 이미 두 번이나 샷을 하고도 아직 그린 60야드 밖이라는 생각까지 겹쳐지면서 줌마 골퍼의 실루엣이 더욱 크게 머리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샷… 공만 보자 다짐했건만 야속한 클럽헤드는 공 뒤편 물렁한 땅을 쳐버렸고, 공은 클럽이 아니라 튕겨 나오는 흙의 힘으로만 움직인 듯 바로 앞에 콕 떨어졌다.

바로 전 홀에서 잡았던 그 52도 웨지였고 거리도 얼추 비슷했지만 결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 순간 귀를 울리는 줌마 골퍼의 한마디. “실수도 하는군요.”
아니, 그럼 무슨 컴퓨턴가, 아니 프로골퍼라도 되는 줄 아셨나?
이것 보세요, 나도 완전 아마추어 골퍼거든요. 어쩌다 잘 맞은 샷도 나오지만 누가 보면 긴장되고 신경 곤두선다고요.

투덜투덜 머리 속을 어지럽힌 불평은 또 다른 미스 샷을 만들 뿐이다. 결국 그 홀 스코어는 4온2퍼트 더블파가 되고 말았다.

마스터스 토너먼트 같은 큰 대회를 중계나 신문 보도를 통해 접하면 프로골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갤러리들 사이로 5m도 안돼 보이는 좁디 좁은 공간을 정확하게 반으로 가르며 공을 날려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에게 그런 샷은 꿈일 뿐이다.

수천, 수백, 수십, 아니 단 한 팀, 다음 팀이 일찍 티잉 그라운드에 나와 지켜보고 있어도 신경 쓰이지 않나 말이다. 멀찌감치 서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상황이라도 마음 쓰이는데 백 스윙하는 클럽 끝에 맞지 않을까 싶을 만큼 바짝 다가와서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어쩌란 말인가.

왜 비켜달라 말 못했나 싶지만 그 상황에서 저리 가라 했으면 오해사기 딱 맞았을 것이다. 잘 친다며 보고 배우겠다고 선 사람에게, 그것도 그날 처음 만난 동반자에게 샷 하는 데 신경 쓰이니까 비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말이다. 뭐, 적당히 기분 좋은 말로 비켜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도, 지금도 그 적당한 말을 찾기가 힘들다.

결국 결론은 이거다. `나는 그러지 말자`

아무리 멋진 플레이로 입 벌어지게 하더라도 상대가 여기 서서 나 하는 것 좀 보라고 하지 않는 이상 바짝 다가서서 관찰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는 게 그날 내린 결론이었다. 뭔가 배우겠다는 불타는 열정도 좋지만 그 불똥이 동반자의 머리 속으로 튀어 대형 화재를 일으켜서는 안 될 일이다.

뭐 하나 깨달은 게 있으니 그 줌마 골퍼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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