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개발보상비 수십억원을 예치해 특별관리고객으로 분류돼 있는 김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 한 가마니 지고 금촌역 앞에서 술과 바꿔 먹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신도시 개발로 보상이 한창인 파주·고양시 등 경기북부에서 간간이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요즘 이 지역엔 “자식에게 10억원씩 물려주는 게 유행” “파주·고양에선 돈 자랑 하지 마라”라는 말이 나돈다. 작년 파주·고양지역에 풀린 개발 보상비는 3조1519억원으로, 전년(4556억원)에 비해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운 좋게 이사 간 3곳마다 보상 받는 ‘대박’이 터져 100억원대 자산가 반열에 오른 윤활유 대리점 사장, 경운기를 몰고 가다 중소기업 오너의 고급승용차를 접촉하곤 오히려 큰소리쳤다는 70억대 재산의 ‘경운기 할아버지’ 얘기는 이 지역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 은행서 6천만원짜리 외제차 사줘
파주시 1차 운정지구 보상금으로 340여억원을 받은 윤모(48)씨는 금촌동 지역 은행에 100억원 넘는 돈을 예치했다. 대가로 은행은 6000만원이 넘는 고급 외제 SUV를 윤씨에게 사줬다.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부분)만 해도 그런 차를 몇 대씩은 사줘도 될 만하기 때문.
윤동렬 한국토지공사 삼송지구 사업단장은 “작년 말 완료된 고양시 삼송지구 토지보상에서 100억원 이상 받은 사람만 11명이었다”며 “요즘 이 지역을 다니는 차들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중 개관할 일산신도시의 대형종합공연장 아람누리도 이 점에 착안, 차를 팔 때 공연티켓을 끼워 팔 수 있도록 외제차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인근 유흥업소들도 호황을 맞고 있다. 일산의 ‘V’룸살롱 이모 부장은 “평일에도 저녁 8~9시 이전에 와야 자리가 있다”며 “고양시뿐 아니라 파주시 분들도 손님의 절반 정도 된다”고 말했다.
파주·고양시청에서도 즐거운 공무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상당수 공무원들이 이 지역 출신이라 토지보상 대상자가 됐기 때문. 고양시청의 한 공무원은 3차 운정지구 보상자 명단에 들어가 올해 말 10억원을 받기로 돼 있다. 파주시청의 한 공무원도 “요즘 공무원들이 박봉과 과다업무로 시달리는데, 보상을 받고 나니 일이 힘들 땐 (공무원을)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시는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업을 마무리 짓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파주시는 작년 행정자치부로부터 배정받은 채무한도 195억원 전부를 빌렸다. 통일로 우회도로 등 도로 확·포장 공사를 위해서였다. 올해 들어서도 문산~연풍 간 도로건설 등을 위해 채무 한도액 241억원 중 200억원을 이미 경기도 지역개발기금에서 빌렸다.
검·경찰은 최근 들어오는 소송들이 대부분 근거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문중 땅과 관련된 것들이어서 골치 아파한다. 고양지청 송승섭 전 차장검사는 “계약서도 없으면서 몇 대조 할아버지가 땅을 샀다고 우기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난감해 했다. 파주시의 경우, 2003년 47건에 그쳤던 ‘조상 땅 찾기 운동’ 건수가 2005년 233건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작년에도 159건에 달했다.
◆ 돈 둘러싼 도박·사기·살인…
지난 1월 파주시 교하읍에선 농사꾼 양모(66)씨 장례식이 치러졌다. 양씨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농지가 1차 운정지구에 수용돼 50억원이 생겼다. 자식을 출가시키고 할 일이 없어 노름에 손을 댄 양씨는 사기도박단에 걸려 2년 만에 돈을 다 날렸다. 충격에 술만 마시던 양씨는 결국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난 2월엔 파주시 일대 문중 소유 토지 6만여 평을 임의로 명의 변경해 팔아 22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모 종중 회장 등 3명이 의정부지검에 구속됐다.
토지보상으로 땅값이 뛰기 시작하던 2005년 설날 파주시 탄현면에선 유산분배 문제로 말다툼을 한 큰형이 막내 동생의 부인과 여조카 2명 등 3명을 엽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사건도 일어났었다.
◆ 일부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생활
돈을 아끼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파주시 야당리의 농지로 50억원을 보상 받은 성모(55)씨는 요즘 바다낚시에 푹 빠져 있다. 일주일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있으면 200여만원만(?) 쓰면 되기 때문이다.
성씨는 “아내에게 4000만원을 줬더니 6개월 만에 다 써버리더라”며 “도시에선 술 한번 마시면 하룻밤에 200만~300만원 나가는 게 다반사인데 바다에 나가면 그런 걱정 없이 편하게 쉬다 올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작년 말 고양시 삼송지구에서 120억원을 보상 받은 한 50대 농부는 요즘도 된장과 김치를 반찬 삼아 공깃밥 한 그릇이면 한 끼를 거뜬히 해결한다. 그는 “돈이 많으나 적으나 내 생활에 별 변화는 없다”며 “그저 맘 편하게 살다가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