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고양에선 돈 자랑 마라"

3조 개발 보상금 풀려..벼락부자들 ''돈잔치''
  • 등록 2007-04-07 오전 9:11:41

    수정 2007-04-07 오전 9:11:41

[조선일보 제공] 지난달 2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술을 마시던 김모(42·파주시 야당리)씨는 은행 지점장에게 전화를 했다.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하니 1000만원만 가져다 달라”는 통화였다. 밤 10시였지만 해당 은행 직원이 30분 만에 나와 사인을 받고 김씨에게 수표를 건넸다.

은행에 개발보상비 수십억원을 예치해 특별관리고객으로 분류돼 있는 김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 한 가마니 지고 금촌역 앞에서 술과 바꿔 먹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신도시 개발로 보상이 한창인 파주·고양시 등 경기북부에서 간간이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요즘 이 지역엔 “자식에게 10억원씩 물려주는 게 유행” “파주·고양에선 돈 자랑 하지 마라”라는 말이 나돈다. 작년 파주·고양지역에 풀린 개발 보상비는 3조1519억원으로, 전년(4556억원)에 비해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운 좋게 이사 간 3곳마다 보상 받는 ‘대박’이 터져 100억원대 자산가 반열에 오른 윤활유 대리점 사장, 경운기를 몰고 가다 중소기업 오너의 고급승용차를 접촉하곤 오히려 큰소리쳤다는 70억대 재산의 ‘경운기 할아버지’ 얘기는 이 지역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 은행서 6천만원짜리 외제차 사줘

파주시 1차 운정지구 보상금으로 340여억원을 받은 윤모(48)씨는 금촌동 지역 은행에 100억원 넘는 돈을 예치했다. 대가로 은행은 6000만원이 넘는 고급 외제 SUV를 윤씨에게 사줬다.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부분)만 해도 그런 차를 몇 대씩은 사줘도 될 만하기 때문.

윤동렬 한국토지공사 삼송지구 사업단장은 “작년 말 완료된 고양시 삼송지구 토지보상에서 100억원 이상 받은 사람만 11명이었다”며 “요즘 이 지역을 다니는 차들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중 개관할 일산신도시의 대형종합공연장 아람누리도 이 점에 착안, 차를 팔 때 공연티켓을 끼워 팔 수 있도록 외제차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인근 유흥업소들도 호황을 맞고 있다. 일산의 ‘V’룸살롱 이모 부장은 “평일에도 저녁 8~9시 이전에 와야 자리가 있다”며 “고양시뿐 아니라 파주시 분들도 손님의 절반 정도 된다”고 말했다.

◆ 거액 보상 받는 공무원도 속출

파주·고양시청에서도 즐거운 공무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상당수 공무원들이 이 지역 출신이라 토지보상 대상자가 됐기 때문. 고양시청의 한 공무원은 3차 운정지구 보상자 명단에 들어가 올해 말 10억원을 받기로 돼 있다. 파주시청의 한 공무원도 “요즘 공무원들이 박봉과 과다업무로 시달리는데, 보상을 받고 나니 일이 힘들 땐 (공무원을)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시는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업을 마무리 짓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파주시는 작년 행정자치부로부터 배정받은 채무한도 195억원 전부를 빌렸다. 통일로 우회도로 등 도로 확·포장 공사를 위해서였다. 올해 들어서도 문산~연풍 간 도로건설 등을 위해 채무 한도액 241억원 중 200억원을 이미 경기도 지역개발기금에서 빌렸다.  


 
 

 
 
 
 
 
 
 
 
검·경찰은 최근 들어오는 소송들이 대부분 근거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문중 땅과 관련된 것들이어서 골치 아파한다. 고양지청 송승섭 전 차장검사는 “계약서도 없으면서 몇 대조 할아버지가 땅을 샀다고 우기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난감해 했다. 파주시의 경우, 2003년 47건에 그쳤던 ‘조상 땅 찾기 운동’ 건수가 2005년 233건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작년에도 159건에 달했다.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한국토지공사 삼송사업단 직원들 명함엔 아예 휴대전화번호가 없다. 폭주하는 항의에 시달리다 못해 내린 처방이다. 삼송지역 주민들은 평균 토지 보상가가 서울 은평뉴타운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돈 둘러싼 도박·사기·살인…

지난 1월 파주시 교하읍에선 농사꾼 양모(66)씨 장례식이 치러졌다. 양씨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농지가 1차 운정지구에 수용돼 50억원이 생겼다. 자식을 출가시키고 할 일이 없어 노름에 손을 댄 양씨는 사기도박단에 걸려 2년 만에 돈을 다 날렸다. 충격에 술만 마시던 양씨는 결국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난 2월엔 파주시 일대 문중 소유 토지 6만여 평을 임의로 명의 변경해 팔아 22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모 종중 회장 등 3명이 의정부지검에 구속됐다.

토지보상으로 땅값이 뛰기 시작하던 2005년 설날 파주시 탄현면에선 유산분배 문제로 말다툼을 한 큰형이 막내 동생의 부인과 여조카 2명 등 3명을 엽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사건도 일어났었다.

◆ 일부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생활

돈을 아끼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파주시 야당리의 농지로 50억원을 보상 받은 성모(55)씨는 요즘 바다낚시에 푹 빠져 있다. 일주일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있으면 200여만원만(?) 쓰면 되기 때문이다.

성씨는 “아내에게 4000만원을 줬더니 6개월 만에 다 써버리더라”며 “도시에선 술 한번 마시면 하룻밤에 200만~300만원 나가는 게 다반사인데 바다에 나가면 그런 걱정 없이 편하게 쉬다 올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작년 말 고양시 삼송지구에서 120억원을 보상 받은 한 50대 농부는 요즘도 된장과 김치를 반찬 삼아 공깃밥 한 그릇이면 한 끼를 거뜬히 해결한다. 그는 “돈이 많으나 적으나 내 생활에 별 변화는 없다”며 “그저 맘 편하게 살다가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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