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20년 7월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세균 국무총리와 점심 약속을 취소했다. 당일 오전 전화로 급박하게 이뤄진 일정 변경이었다. 박 시장이 고한석 서울시장 비서실장과 면담한 직후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고 예정된 공식 일정 모두를 취소했다.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영정.(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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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그날 오전 10시44분께 종로구 가회동 서울시장 공관을 나섰다.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배낭을 멘 채였다. 택시를 탄 박 시장은 인근 와룡공원으로 갔다. 거기서 박 시장은 주변 인물과 통화와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박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건 오후 3시49분 성북동 핀란드 대사관저 주변이었다. 이후 전화기는 꺼졌다.
박 시장 딸은 오후 5시 아버지가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선 이후 전화기마저 꺼져 불안하다고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이튿날 0시1분,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박 시장은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박 시장의 유서가 공개됐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내용이었다.
유서에는 ‘왜’가 없었다. 박 시장이 행적을 보면 급작스럽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미궁이었다. 박 시장은 전날까지만 해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정을 홍보했다. 공식 외부 일정을 소화하다가 돌연 하루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성범죄 연루 가능성이 유력한 이유로 꼽혔다. 박 시장은 실종 전전날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박 시장은 모종의 경로를 통해 자신이 피소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 하루 전날이었다. 이후 심경의 변화가 일어 극단적 선택했다는 것이다.
수사로써 박 시장의 성범죄 유무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피고소인(박 시장) 사망으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다만 법원에서 박 시장의 성범죄는 인정됐다. 피해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또 다른 가해자가 재판을 받으면서 드러났다. 법원은 박 시장이 여비서를 상대로 음란한 사진과 문자를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박 시장의 성범죄를 인정했다.
박 시장 자신도 혐의를 부인하지 않은 정황도 있다. 실종 당일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이 파고를 넘기기 힘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간접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시장은 생전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을 변호하며 여성 인권 신장에 애썼다. 이런 인물이 성범죄로 피소된 것을 두고 비난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