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9년 5월20일. 광주 북구에 있는 교회 앞 골목길에서 40대 여성이 흉기로 살해됐다. 예배를 마치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피해자가 혼자일 때를 노린, 밤늦은 9시20분께 벌어진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그런데 피해자는 그대로였다. 원한관계 탓에 발생한 살인이 의심됐다. 그러나 피해자는 의사로 일하던 전문직 여성으로서 주변에 원한 살 일이 딱히 없었다.
| 연행되는 박모씨.(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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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그해 7월 범인의 집을 덮쳤을 때, 범인은 옷을 빨고 있었다. 자기 옷에 묻은 피해자의 핏자국을 지우던 중이었다. 경찰은 박씨의 차량과 옷가지에서는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하고 피의자로 입건했다. 여죄를 캐보니 사건 발생 12일 전에 발생한 여성 교인 살해 사건과 동일범이었다.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는 “교회와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싫어서”였다.
이 사건 범인은 당시 30대 남성 박모씨. 박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탓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어느새 일을 놓고 무직자로 지냈다. 부모의 권유로 2008년 7월 몽골인 여성과 국제결혼했다. 박씨의 부인은 고국에 대한 향수 탓에 한국 생활을 힘겨워했다. 부부는 다투는 날이 잦았다. 2009년 4월 박씨의 부인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부인을 쫓아 몽골에 간 박씨는 처가에서 면박을 당했다. 처가 식구는 부인이 “성당에 간 이후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찾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박씨의 부인은 성당 신자였다. 그러나 박씨는 같은 종교인이던 처가 식구가 아내를 해친 것으로 오해했다. 종교인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을 품기 시작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씨는 종교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교회와 성당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2009년 5월8일 첫 범행을 저질렀다. 광주 한 성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40대 여성이 피해자였다. 박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고는 앞서 교회 앞에서 두 번째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종교인 가운데 여성만 노린 ‘묻지마 살인’에 종교계뿐 아니라 지역 사회가 들썩였다. 법원은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수법이 잔인하고, 범행을 꾸미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울러 범행도구를 저수지에 버려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고, 피묻은 옷을 빨래하다가 붙잡힌 것으로 고려해도 죄질이 좋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박씨의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가석방 불허’를 권고 의견으로 달았다. 박씨가 수형생활을 거치면서 가석방되지 않도록 법원 입장을 확실히 해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