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때 부산발 서울행 116호 특급열차는 빠르게 매호 건널목으로 돌진 중이었다. 건널목을 약 100미터 앞두고 건널목 위 오토바이를 발견한 기관사는 급정거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열차는 오토바이를 들이받고 약 540미터를 더 밀고 간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본격화된다. 해당 기관사는 사고 현장을 확인하려고 열차를 후진시킨다. 그때 부산발 동대구행 302호 보통급행열차가 후진하던 그 특급열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사망 55명, 부상 240여 명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열차 사고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상 최악의 열차 참사로 기록된다. 1977년 발생한 이리역 폭발 사고가 사망자 59명 포함 사상자 1400여 명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열차가 서로 추돌해서 생긴 사고 중에서는 이 사고가 최악의 인명 피해를 냈다.
특급열차 기관사와 부기관사 역시 문제였다. 오토바이를 받은 후 후진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관제소에 알리지 않았다. 후진할 때 맨뒤에 내려 수신호를 보내며 후행 열차에 주의를 주는 책무가 있는 여객전무도 이 일을 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후행 보통급행열차 기관사는 신호마저 지키지 않았다. 사고 현장 신호기에 이미 시속 15km로 서행해야 하는 적색 신호가 점멸되고 있었으나 해당 기관사는 이 신호를 무시하고 무려 시속 80km로 내달렸다.
사고 수습을 위해 경찰, 군인, 공무원 등 1000여 명의 인력과 헬기 3대, 구급차 50대가 동원됐다. 뒷날 합동분향소가 설치됐으며, 국민들은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성금도 모금했다. 두 열차의 기관사와 오토바이 운전자 등 관련자 5명이 구속되고 당시 철도청장은 해임됐다. 사고 이후 이 건널목은 폐쇄됐고 사고 현장에서 서울 방향으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굴다리가 생겼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22년 뒤인 2003년 8월에도 사고 발생 지점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 고모역에서 또다시 열차 추돌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96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재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