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국내에선 앞으로 훔친 균주로 보툴리눔 톡신, 일명 보톡스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연내 법안 통과가 예상되는 ‘감염법 예방법’에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불법 취득 사실이 확인되면 균주 보유 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감염병 예방법)은 빠르면 연내 정기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감염법 예방법엔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 관리·감독 강화’(최종윤의원안)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해당 법안은 보건복지위 법안소위 심사를 거쳐 법안상정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 구성은 오는 30일 이뤄질 예정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툴리눔 톡신을 포함한 8종의 세균·바이러스는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에 포함돼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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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연내 통과 유력...균주·염기서열 의무제출
보툴리눔 톡신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누스균’(Clostridium botulinum)에서 추출한 맹독성 물질로 약 0.0000002g(0.2마이크로그램)의 양으로도 70kg 성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즉, 보툴리눔 톡신 1g만으로도 100만 명 살상이 가능한 자연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다. 이 때문에 외국에선 보툴리눔균을 생화학 무기로 취급하고, 글로벌 생물무기 금지협약에 따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감염법 예방법 개정안은 보툴리눔 툭신 보유 사업자가 질병관리청장에게 해당 균주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장은 제출된 톡신 균주와 실제 생산 중인 균주가 일치 여부를 검사해 유전자 정보를 포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해당 균주에 대한 전체 염기서열 자료 제출이 권고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바뀌게 된다”면서 “아울러 실제 제출된 균주와 생산 중인 균주의 일치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생산현장(워킹셀)의 불시검문이 이뤄지는 형태로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균주, 불법 취득 확인되면 허가 취소
문제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대부분의 톡신 사업자들이 사업취소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수년간 논란이 된 것처럼 이미 국내 상당수 사업자들은 톡신 균주를 불법 취득해 보톡스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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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법안은 톡신 보유허가를 받은 자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엔 보툴리눔 톡신 균주 보유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균주를 정당한 사유 없이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엔 보툴리눔 톡신 균주 보유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됐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0년 동안 사업화가 이뤄진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미국·유럽 통틀어 단 2개뿐”이라면서 “그런데 한국에서만 십수 년간 스무개가 넘는 보툴리눔 균주가 새롭게 발견됐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제테마·메디톡스만 균주 기원 명확
현재 국내에서 정상 경로로 톡신 균주 취득이 확인된 곳은 제테마(216080), 메디톡스(086900) 등 2곳뿐이다. 나머지 업체들은 유럽에서 균주를 정식으로 도입했거나, 국내 모처의 마구간, 개천, 놀이터, 통조림 등지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테마·메디톡스 등 두 회사를 제외하곤 톡신 균주 기원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제테마는 지난 2017년 ‘영국 공중보건원’(PHE, Public Health England) 산하기관인 NCTC에서 톡신 균주(NCTC13319)를 상업용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도입했다. 제테마는 지난 2019년 12월 보유하고 있던 보툴리눔 톡신 균주 유전자정보를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등재했다. 제테마가 NCBI에 등록한 보툴리눔균 ID는 P046450(chromosomal DNA), CP046451(plasmid DNA)이다.
메디톡스는 균주를 카이스트(KAIST) 실험실로부터 취득했다. 양규환 박사(3대 식약청장)는 지난 1969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식품미생물학을 연구하다, 카이스트로 보툴리눔 균주를 반입했다. 당시 미국에선 보툴리눔 톡신 균주 국외 반출법이 제정되기 전이다. 양 박사의 수제자였던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창업의사를 밝히며 양 박사로부터 균주를 건네받은 것이다. 다만, 메디톡스 측은 연이은 ‘국제 무역위원회’(ITC) 소송으로 인해 보유 중인 균주의 염기서열을 NCBI에 등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짧은 생각 때문에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면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감염법 예방법에 따른 관련 사업취소는 물론, 무기관리법 위반에 허위사실로 의약품을 품목허가 받은 약사법 위반까지 더해져 대표이사, 연구소장, 생산책임자 등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어울러 민법상의 로열티 문제도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종윤의원실 관계자는 “감염병 예방법은 톡신 업계에 상당히 민감한 법안”이라며 “법안이 복지위를 넘어 법사위로 갔을 때, 관련 업계의 상당한 로비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