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의 독자 리즈 셔윈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본격화한 지난해 3월 30일(현지시간) LA타임스 에디터에게 남긴 말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와 달리,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며 ‘호평의 호평’을 받았던 쿠오모 미 뉴욕주지사의 몸값은 치솟았다. 미 언론들은 쿠오모의 일일 브리핑을 두고 고(故)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노변담화’(爐邊談話; fireside chats)와 빗대며 ‘띄우기’ 일쑤였고, 지지자들로부터 하루에만 수백, 수천 장의 팬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이를 발판삼아 트럼프의 대항마, 즉 잠룡 반열에 올랐던 쿠오모는 단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밟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그는 코로나19 대응에서의 흠결을 숨겼고, 넘지 말아야 할 성추문 선을 넘으며 끝내 추락하고 말았다.
사실상 트럼프가 만든 쿠오모 대망론
쿠오모의 전 비서 샬럿 배넷(25)·전 보좌관 린지 보일런(36)·또 다른 피해자 애나 러치(33)의 발언을 종합하면, 쿠오모는 당시 권력에 흠뻑 빠진 게 분명하다. 정확히 10년전 제56대 뉴욕주지사에 오른 그는 이번 성추문 사달이 나기 전까진 단 한 번도 대중(大衆)의 ‘도마’에 오른 적이 없었다. 부친이자 뉴욕주지사 3선의 고(故) 마리오 쿠오모를 이어 뉴욕 일대에서만큼은 추앙을 받은 인물이었다. 뉴욕 곳곳에 ‘쿠오모 다리’ ‘쿠오모 공원’ 등 부자(父子)의 이름을 딴 설치물이 이곳저곳에 있을 정도다.
권력에 심취한 쿠오모는 자신을 보좌하는 하급자들에게 성정 수치심을 안기는 발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누군가와 이성교제를 원한다” “성관계에 예민하냐”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느냐” 등의 발언은 그가 얼마나 권력에 심취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쿠오모의 무소불위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으로 더욱 증폭됐다.
지난해 봄 뉴욕이 팬데믹으로 사달이 났을 때 단호하면서도 사실에 입각한 절제된 브리핑 발언은 당시 트럼프의 ‘오락가락’ 브리핑과 곧잘 비교됐다. 때론 트럼프와 각을 세우며 각종 요구사항을 거침없이 내뱉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쿠오모의 진정성과 열정은 미 전역을 주목하게 했다. 당시 조 바이든 전 부통령·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대사 등 차기, 차차기 대선후보급 인사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급기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대통령 쿠오모’(PresidentCuomo)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쿠오모 대망론’의 등장이었다.
|
쿠오모의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친정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사퇴론이 빗발친다. 그의 수족들도 하나둘씩 외면하고 있다. 첫 주지사 당선 때부터 손발을 맞춰왔던 캐러스 로즈 수석고문, 지난 3년간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윌 번스 공보담당 비서관을 비롯해 최소 6명이 사직서를 냈다. 동성결혼 합법화·최저임금 15달러 달성·엄격한 총기 규제 등 쿠오모의 업적을 나눴던 이들은 이제 쿠오모와 함께 삿대질을 받는 걸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측근들의 사표 행렬은 이어질 것이라고 미 언론들이 내다보는 이유다.
그럼에도, 쿠오모는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나는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고통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만약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나를 오해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더 나아가 “나는 그 누구도 의사에 반해 만진 적이 없다”는 문장을 두 차례나 반복하기도 했다.
자신의 거취는 뉴욕주 검찰 조사 등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게 쿠오모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최소 수개월이 걸리는 일이다. 추가 피해자가 등장하거나 피하지 못할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공산이 크다. 사실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쿠오모와 엇비슷한 처지에 놓인 바 있다. 두 전·현직 대통령은 각각 성추문 ‘입막음 돈’ 스캔들, ‘나쁜 손’ 논란 속에서도 이를 헤쳐나간 인물들이다. 쿠오모 역시 이들의 전철을 꿈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