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미국과 한국이 기업인 불법에 대처하는 법

  • 등록 2012-01-13 오전 10:20:00

    수정 2012-01-12 오전 9:12:27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3일자 22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민재용 기자] 지난 2001년 12월, 9·11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 사회는 엔론 파산이라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1985년 에너지 회사로 출범, 15년만에 미국 7대 대기업에 선정된 엔론이 갑작스레 파산을 선언했다. 엄청난 규모의 분식 회계가 내부자 고발에 의해 들통났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엔론은 영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5억 8000만달러 규모의 적자를 장부에 기입하지 않고 매출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 15억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5년간 계속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사회는 제2의 엔론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즉각 단죄에 나섰다. 미 사법 당국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징역 24년형을 선고했고 스킬링은 아직 수감중이다. 일부 경영진은 개인적으로 소송을 당해 주주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피해보상을 해야 했다. 엔론의 회계감리를 맡았던 유명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도 문을 닫고 말았다.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미국은 `룰`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돈 110억달러를 횡령한 통신업체 월드컴의 CEO인 버나드 에바스가 징역 25년형을 받고, 주식 내부자 거래를 통해 부당 이득을 챙긴 생명공학업체 임클론의 CEO 샘 왁살이 징역 7년형을 받은 것도 미국 사회의 엄격한 처벌 문화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분식회계 등 이른 바 룰을 어기는 행위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러나 이들을 단죄하는 태도는 미국과 사뭇 대비된다.

지난 2008년 6월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은 정몽구 현대자동차(005380) 회장은 두 달 만에 사면복권됐다. 앞서 2006년 1000억원대 분식 회계 혐의로 역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은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도 2007년 사면됐다. 2009년 배임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그해 말 역시 사면됐다.

최근 회사돈 2000억원 횡령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한 차례 분식회계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사면받은 전력을 갖고 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최 회장의 횡령이 시작된 건 2008년 10월 경으로 2003년 SK글로벌 분식 회계에 대해 사면을 받은지 불과 두 달 만이다.

미국처럼 수십년 형의 징역형을 내린다고 정의가 바로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그리고 사면 복권`처럼 정형화(?)된 한국형 단죄가 우리나라 기업 총수들의 불법을 오히려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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