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홀에서 가장 잘 친 사람, 그래서 내 돈 따간 밉상, 오~노(Oh~No)하고 외쳐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 오너라는 말씀.
골프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 오너라는 말은 “당신의 그 멋진 샷을 보여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잘 치는 사람에 대한 극한 존경을 표시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당신의 그 샷, 먼저 시범 보이면 잘 따라 한번 해보겠습니다 뭐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다들 알다시피 실상은 ‘아니올시다’다. 오너가 잘 친다고 줄줄이 따라서 잘 치는 거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너의 미스 샷은 잘도 따라 한다.
그날 박 부장네 그룹도 마찬가지였다. 늘 하던 대로 스킨스 내기를 했는데 3개씩 쌓였던 스킨을 3번홀에서 홀랑, 다시 6번홀에서 홀랑 챙기면서 박 부장이 단연 선두가 되었다.
파4의 7번홀. 박 부장이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는 데 씩씩대며 먼저 와 있던 이 부장이 한 마디 했다. “어디, 지갑 두둑해진 오너 샷 한번 봅시다. 잘 쳐봐요. 따라서 한번 잘 해보게.”
킥킥대던 이 부장이 다음 차례. 그런데 그의 샷도 왼쪽으로 당겨졌다. 다음 김 차장도 왼쪽, 전 홀 더블 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혼자 멀리 떨어져 걸어왔다가 마지막에 티 샷하게 된 이 과장의 볼만 페어웨이 약간 오른쪽으로 잘 날아갔다.
“이거 다 오너 탓이야. 선(先)이 잘못 치니까 다들 따라가잖아.” 이 부장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그 다음 홀 티 샷도 마찬가지, 9번홀은 세컨 샷이 다들 같은 방향으로 쏠렸다. “나는 절대로 저리로 가지 않을 거야”하면서 주문 외듯 선포하고 샷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에 홀린 거 같아 표정들이 묘해졌다.
정말 선(先)따라 가는 게 골프일까.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스 샷의 경우 그럴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골퍼의 샷은 그 직전 골퍼의 마음에 담았던 사물, 혹은 생각에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먼저 크게 슬라이스 나는 동반자의 샷을 보며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나는 슬라이스 내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슬라이스’라는 말이 근육에 각인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왕 슬라이스를 내는 게 골프다. 눈 앞의 연못이 마음에 담기면 볼이 잠수를 하고, OB말뚝이 눈에 띄면 다음 샷 장소는 OB티잉 그라운드가 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나는 하지 말아야지, 저건 피해야지 하고 굳게 다짐하면 할수록 하고 싶지 않은 샷, 피하고 싶은 장애물이 덤벼드는 것이다.
그럼 어째야 하나.
동반자들 샷 하는 걸 아예 보지 않는 게 수가 될 수 있다. 프로골프 경기를 보면 유명 선수들이 동반자들 샷할 때 아예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리듬과 샷 감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누구나 고유의 리듬이 있는데 굿 샷이든, 미스 샷이든 상대방 샷에 빠져 버리면 자기 리듬이 엉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돈을 잃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거나, 코 앞의 버디 퍼팅을 놓쳐 콧김이 세졌을 때, 즉 마음이 흔들릴 때는 동반자의 미스 샷 리듬이 내 몸으로 파고 들어 올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아마추어들끼리 라운드하면서 서로 샷 안 봐주고 제때 ‘굿 샷’ 안 하면 아예 그날 하루, 아니 더 나아가 그날 이후 쭉 관계가 엉켜버릴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