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빌린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성장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몇 가지 조건이 붙지만 가능하다.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이런 성장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어느 나라가 설비투자를 많이 했는데 수요가 부족해서 기업의 설비 가동률이 떨어지고, 제품의 값이 떨어지는 등 경기 후퇴가 일어났다고 하자.
그래서 그 나라 정부, 특히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어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사람들이 빌린 돈으로 다시 소비를 시작했으나 여전히 생산이나 고용이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값이 싼 제품들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금융기관이 사람들에게 돈을 계속 빌려주기도 겁이 나고, 사람들도 부채를 견디어 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일단 빌린 돈으로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채권 등의 자산을 산다.
그래서 자산의 가격이 올라간다. 자산의 가격이 늘어난 부채보다 더 많이 올라간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재산이 늘어만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축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소비해 버린다. 순재산이 늘어나자 금융기관은 이를 담보로 사람들에게 다시 돈을 빌려준다. 금융기관은 이익을 늘어나므로 좋아한다.
새로 빌린 돈으로 사람들은 또 소비를 늘린다. 이런 결과로 비록 해외에서 수입도 늘어나지만 그 나라의 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용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입품의 유통에 관련된 일자리가 늘어나고, 금융기관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일자리가 늘어났다.
이렇게 부채가 늘어나고 자산 가격이 올라가고, 생산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자 경제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나라 경제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경제가 잘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 물건을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인 주변국들은 달러가 늘어난 만큼 자기 나라 통화량을 늘렸다. 그 힘으로 주변국의 경제도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면 이런 상태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영원히 갈 수 있을까? 만약 영원히 갈 수만 있다면 지상에 천국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왜 일어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이것은 머리를 땅에 박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는 오래 갈 수 없다.
생산자산이 아닌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은 여기서 새로운 부가가치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시장의 평가로 또는 사람들의 집단 환상으로 값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다.
부동산 값이 많이 올라갔다고 여기서 부가가치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동산으로 많은 돈이 몰리면 그 만큼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부분은 돈이 없어서 위축되어 버린다.
미래 성장 잠재력은 더 낮아진다. 이것보다 더 가깝게 문제가 되는 것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믿고 빚을 늘린 경우다.
빚이 늘어나면 여기에 이자도 늘어난다. 다행히 금리가 낮아지고 있는 중에는 이자가 별로 괴롭지 않다.
그러나 무슨 일로 이자율이 올라간다고 하자. 그러면 부채의 원금이 늘어난 상태에서 이자율이 올라가므로 부담을 느끼게 된다. 이자를 내려면 어디서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소득의 대부분은 소비하고 있다.
그래서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자산의 일부를 팔아서 부채 원금을 줄이든가 이자를 물어야 한다. 상황이 이런 정도에 이르게 되면 부채에 의한 성장의 한 순환이 마무리 된다.
이런 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지금 전세계 금융시장에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은 바로 부채에 의한 성장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