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총 하루만에 투항했지만…`아이들 볼모` 재발막을 대책 시급

한유총 4일 “국민께 심려끼쳐 죄송…조건없이 철회”
정부 엄정대응, 등 돌린 여론, 법인취소 위기에 백기
매년 집단행동 되풀이 학부모들 “국공립유치원 확대”
  • 등록 2019-03-04 오후 6:18:42

    수정 2019-03-04 오후 6:18:42

4일 오후 경북 포항교육지원청 앞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포항지회 회원 30여명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주도한 사립유치원 개학 연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정부의 강경대응과 싸늘한 국민여론에 밀려 개학연기 투쟁을 하루만에 철회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한 정부에 여론의 힘이 실리면서 결국 백기를 든 모양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볼모로 한 유치원 이익집단의 투쟁이 반복돼온 만큼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은 정부에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개학연기 무리수에 회원 참여 저조

한유총은 4일 “개학연기 사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한유총이 전개했던 개학연기 투쟁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백기투항은 정부의 강경대응과 싸늘하게 돌아선 국민여론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학연기 투쟁 첫날 회원들의 참여는 전체 사립유치원의 6.2%(239개원)에 그쳤다. 투쟁 동력을 상실하면서 이를 통해 얻게 될 이익보다는 형사처벌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사단법인 설립허가 취소방침은 결정타가 됐다. 한유총이 법인 지위를 박탈당하면 국내 최대 사립유치원 단체라는 대표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 그간 유치원 회계에서 회비 납부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친목모임으로만 유지가 가능하며 회비도 회원들의 사비로 내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단법인의 지위를 잃게 되면 사립유치원 단체라는 대표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부나 교육청과 협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법인이 아닌 친목모임일 경우 대표자가 찾아와도 한낱 민원인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서울교육청 법인취소 방침이 결정타

한유총은 서울시교육청의 법인 허가를 받아 설립됐으며 설립허가 취소권한도 서울교육청이 갖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지난 3일 수도권교육감 공동기자회견에서 “개학연기와 같은 불법 휴업을 강행하면 민법에 따라 한유총의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법 38조는 ‘법인이 목적 외 사업을 하거나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주무관청이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설립허가 취소 방침은 5일 한유총에 통보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한유총의 투쟁 철회 발표가 있었지만 이미 4일 개학연기를 강행했기 때문에 법인설립허가 취소는 추진할 방침”이라고 했다.

국민 여론도 싸늘했다.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 1일 올라온 한유총 엄단 촉구 청원에는 이날 오후 4시 50분 기준 3만124명이 동참했다. 유치원 학부모 1200명으로 구성된 전국유치원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도 한유총을 상대로 형사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한유총의 아이를 볼모로 한 후안무치한 집단행동에 학부모들의 인내심은 한계점에 다다랐다”며 “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에 대해 형사고발 등을 통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학부모 총궐기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부모 불편 되풀이 “국공립유치원 확대해야”

이날 한유총이 개학연기 투쟁을 강행하면서 맞벌이 부부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 강남구 한 유치원 앞에서 만난 학부모는 “출근해야 하는데 유치원에서 돌봄교실만 운영하는 탓에 버스를 운영하지 않아 직접 데려다 줘야 하니 불편하다”며 “그래도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 유치원에 마냥 화를 낼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유총은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도 집단휴업 카드를 꺼내들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때마다 재정지원 확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저지 등을 요구하면서 일정부분 진전된 결과를 얻었다. 학부모들은 매년 되풀이돼 온 한유총의 집단행동에 대해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의 유치원 학부모 송모(33)씨는 “이참에 사립유치원을 전부 뜯어고쳐야 한다”며 “사립유치원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국공립유치원 확대를 추진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만 3~5세 유아(136만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67만5998명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만,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5.4%(17만237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4.6%(50만3628명)는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학부모들은 사립에 비해 유치원비가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은 국공립유치원을 선호하지만 국공립 취원율은 지난해 기준 25.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자녀를 국공립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추첨에서 탈락,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자녀를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사립유치원이 연간 2조원에 가까운 국가 예산을 지원 받으면서도 회계 투명화를 요구할 때마다 강하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은 “사립유치원의 비리 실태가 공개되면서 국민들도 왜 국공립유치원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며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40% 달성을 약속한 만큼 차질 없이 이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으로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한편 학부모 수요에 따른 국공립유치원 확충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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