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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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준기 조진영 기자] 전날(12일) 촛불민심과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등을 거론하며 박근혜 정권과 선을 그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돌연 박 대통령에게 전화 인사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탄핵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보수층 결집의 한 축인 반 전 총장의 행보를 놓고 청와대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졌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국립현충원 참배에 앞서 서울 사당동 자택 앞에서 만난 기자들이 박 대통령과의 연락 여부를 묻자 “기회를 봐서 인사를 한 번 드리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박 대통령이) 국가원수이기도 하고 새해에 인사를 못 드렸는데, 전화를 한 번 드리는 것이 마땅치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반 전 총장이 전화를 걸어오면) 당연히 받을 것”이라면서도 “무슨 대화를 나눌지는 전혀 알지 못하며, 예측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덕담 수준 정도의 이야기가 오가지 않겠느냐”고 봤다.
그동안 청와대는 반 전 총장의 귀환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주시해왔다. 반 전 총장이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사실상 붕괴한 보수층 결집을 끌어내 담을 ‘그릇’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보수층 결집이 탄핵여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귀국 직후 기자들에게 “광장에서 표출된 국민의 여망을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끌어낸 촛불집회를 치켜세우거나, 지난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며 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이 이날 급작스레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향후 당분간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하되, 정치적·정책적 사안을 두고선 일부 대립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반기문의 집권은 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프레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이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를 두고 청와대의 계산기는 더 바빠졌을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015년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7차례나 만나는 등 국제 다자정상회의 무대에서 자주 조우해왔다. 당시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의 ‘반기문 대망론’과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올해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신년 통화를 한 것과 대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