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12·3 계엄 사태 여진이 지속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정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 신용도에도 타격이 전망되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어서다. 특히 사업 리밸런싱과 재무 개선 과정에서 조(兆) 단위 빅딜을 기대하던 대기업 계열사 매물의 경우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거란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 [챗GPT를 활용한 이미지] |
|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에서 여진이 지속하고 있다. 전날 코스피 지수는 장중 2400선 밑으로 붕괴한 뒤 소폭 오른 2428.16에 마감했고, 코스닥 지수 역시 644.39까지 밀리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계엄 선포 이후 이틀간 6485억원에 달하는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여파다. 원·달러 환율 역시 여전히 1410원 위에서 움직이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계엄 해제 직후인 지난 4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각국 재무장관 및 글로벌 투자자 등에게 “한국의 모든 국가 시스템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는 긴급 서한을 발송했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 안정을 위해 2주간 총 151조원 규모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시장이 요동치면서 한국의 대외 신용도가 이미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M&A를 준비 중인 기업과 사모펀드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대기업들의 사업 리밸런싱, 재무 구조 개선 작업 등이 활발해지면서 알짜 자회사들이 매물로 출회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최대 6조원의 기업가치를 노리는 CJ제일제당(097950) 바이오사업부를 비롯해 효성화학(298000) 특수가스사업부 등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4조원대 가격이 거론되는 SK스페셜티의 경우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가격 협상 중에 있고, 롯데렌탈(089860)은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 1조6000억원 수준에 매각을 논의 중이다.
조 단위 대형 매물은 국내보다는 해외 사모펀드의 참전이 ‘흥행’의 기준이 된다. 예비입찰 단계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다수 참여해 경쟁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해야 높은 몸값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정국 불안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기준이 깐깐해지고, 지갑을 닫는 상황마저 오게 된다면 흥행은커녕 매각 자체의 진전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해외 증시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 무신사, 야놀자 등은 미국 증시 상장을 저울질하고 있다. 모두 조 단위 기업가치를 노리는 유니콘 기업들인데, 비상장 기업의 경우 대외적인 변수가 기업가치 평가에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실제 계엄 사태 이후 미국 증시 상장사인 쿠팡, 웹툰엔터테인먼트(네이버웹툰) 주가도 크게 흔들린 바 있다.
이번 사태가 해프닝에 그치더라도 한국의 대외적인 신용도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계엄령 선포가 신속히 철회된 후에도 정치적 리스크가 몇 달 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며 “장기적인 정치 불확실성은 가계와 기업의 신뢰를 악화시키고 공공 재정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의 킴엥 탄 아태지역 국제 신용평가팀 전무 역시 “(계엄은) 예상치 못한 사건인데, 국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분명한 마이너스 쇼크”라며 “당분간 한국 투자의사 결정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적 리스크가 없는 다른 나라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져 한국 투자를 철회하고 다른 곳으로 투자를 돌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