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버티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제재수위를 놓고 금융감독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뒤늦게나마 소비자들에게 보험금을 내 주기로 한 만큼 원안대로 중징계 안을 고수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징계를 결정한 뒤 처벌 수위를 낮추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들 보험사들이 뒤늦게라도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밝힌 만큼 최종 징계에 앞서 이를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한다.
“경영 공백 등 치명타 면하자”…뒤늦게 결정한 삼성생명
삼성생명은 2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자살관련 재해사망보험금 미지급 전액 1740억원(3337건)을 지급하기로 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 차원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며 “될 수 있는대로 이른 시일 내에 지급하겠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1월에 밝힌 자살방지를 위한 기부금도 수익자에게 지급할 예정이다.
한화생명도 오는 3일 정기 이사회를 열어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방안을 긴급 안건으로 처리할 예정이다. 지연이자를 포함해 지급해야 할 규모는 약 9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은 다시 금감원에’…고민 깊어져
삼성과 한화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공은 다시 금감원으로 넘어왔다. 최종적으로 제재수위를 확정해 통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재심은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로 금감원장의 결제 이후 공식 효력이 발생한다. 특히 CEO 징계는 금감원장 전결 사안이다. 금감원장의 결정에 따라 삼성과 한화 CEO의 운명이 갈리는 셈이다.
금감원으로서는 원안을 고수하느냐 감경사유를 반영하느냐 고민이 깊어진 셈이다. 제재심 직전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한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형평성 차원에서 보면 전액을 지급하기로 한 삼성이나 한화 CEO도 징계수위를 낮추는 게 합리적이다. 문제는 삼성과 한화가 제재심 이후 지급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물론 금감원장이 제재심의 결정을 번복한 전례는 있다. 2014년 KB금융 사태 때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인 게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뒤늦게라도 보험사가 전액 지급하기로 한 만큼 징계수위를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공방과 논란이 많은 사안이었지만 뒤늦게라도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금융당국에 협조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영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자살보험금 사태에 직접 책임이 없는 현 CEO나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은 과한 측면이 있다”며 “소비자 피해 구제에 나선다면 당연히 징계수위를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용어설명 자살보험금
일반사망보험이나 재해사망보험 가입 2년 후 자살한 경우 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 보험사들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보험가입 2년이 지나면 자살해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재해사망특약 형태로 상품을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