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요? 안 됐죠. 오히려 저희는 과거 지방직보다 더 못하다고 봅니다.”
소방공무원은 지난 2020년 4월 1일자로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일선 소방관들은 “달라진 것은 ‘계급명’뿐”이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소방관은 “국가직 전환으로 계급명이 지방소방사, 지방소방교 등에서 ‘지방’을 빼고 소방사, 소방교 등으로 바뀐 것 밖엔 없다”며 “일례로 국가직이면 공무원증에도 소방청장으로 찍혀야 하는데 아직까지 시도지사로 찍히는데도 우리가 국가직 공무원인가”라고 반문했다.
| 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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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국가직 공무원’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중앙정부가 아닌 시도지사에 여전히 예산·인사권이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별 각자 재량에 맡기다보니 지역별로 소방인력 확보뿐 아니라 화재 진압 장비, 교육 훈련 인프라 등이 충분히 마련될 수 없는 셈이다. 지난해 3월 전북 김제시 주택 화재와 같은 해 12월 제주 서귀포시 창고 화재 모두 현장 인력 부족에 따른 순직 사고로 귀결된다. 최근 경북 문경시 육가공 공장 화재로 두 명의 젊은 소방관이 순직한 것도 열악한 환경이 빚은 참사다. 아울러 2001년 월 8만원으로 오른 뒤 24년째 그대로인 화재진화수당 등과 같은 처우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김동욱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대변인은 “예산권과 인사권을 소방청이 가져오지 못하면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경찰처럼 인사와 예산이 독립된 형태의 지방소방청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일한 국세라고 할 수 있는 소방안전교부세마저 올해 일몰을 앞두고 있어 소방관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소방 노조에서 그나마 지역별 처우 편차를 줄여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소방안전교부세를 법제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가직이라고 하면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인력 선발도 국가에서 해야 하는데 아직도 시도에서 관할하고 있다”며 “말로만 국가직이지 사실상 국가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 그래픽=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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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평균 4명가량의 순직자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행정 시스템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모두 40명에 이른다. 문경 화재 사고후 1개월간 현장 조사를 마친 소방청이 13일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도 ‘안전’이 핵심 골자다. 재난현장표준절차(SOP)를 대원 안전 중심으로 전면 개정하고 소방 대원 안전사고 발생 즉시 신속동료구조팀(RIT)을 가동하는 한편 오는 2026년까지 실화재 훈련시설을 15개소로 확대 건립해 교육 훈련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그간 대형화재의 주요인으로 지목됐던 샌드위치패널 건축물의 내화 시간, 방화 구획 등 안전 기준은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