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코로나19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냉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호주 등 중견국들과 협력하는 초월적 외교로 신냉전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적 외교 안보 학자로 알려진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조언이다.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역임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19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등으로 변화할 국제정세와 한반도의 선택 등을 담은 책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청림출판)를 출간했다.
|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2019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북한이 제재완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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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미·중 간 갈등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 방안을 △미국과 동맹 강화 △중국에 편승 △강대국에 벗어나 홀로 서기 △현상 유지 △초월적 외교 등 5가지로 제안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초월적 외교에 방점을 뒀다. 초월적 외교는 현재의 미국 중심 동맹에서 벗어나 다자주의와 협력·통합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초월적 외교가 미국·중국의 견제 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주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 이사장은 이 부분에 대해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역설적이지만 초월적 외교를 하려면 한미 동맹이 견고해야 한다”며 “초월적 외교는 당장 지금의 진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닌,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동맹국들과 조금씩 협력해 미국과 중국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문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질서는 미·중 양강 구도의 현상 유지 가능성이 높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만들어놓은 신냉전 구도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화와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키긴 했지만 급진적으로 국제 정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미국 내에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중국 때리기’가 국익에 부합한다는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미·중 대결은 오히려 신냉전의 대두라는 악화한 현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도 관측했다.
문 이사장은 “한국은 미·중 신냉전 구도에서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현재의 전략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이는 미·중 관계가 좋을 때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아직 한미 동맹이 없으면 우리 안보가 끝난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단기적으로는 한미동맹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관계를 이어가면 영구적으로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동맹이 정당화되려면 공동의 적과 위협이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영원히 북한·중국을 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집단안전보장체제로 가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생각 자체가 금기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문 이사장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일본·호주 그리고 독일·프랑스·캐나다 등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협력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을 예방할 수 있다”며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중견국 협력을 이끌었던 인물로 1990년대 호주 외무장관을 했던 개럿 애번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냉전이 끝날 당시 애번스는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넘어서는 다자주의와 지역주의 협력을 제기한 바 있다고 밝히며 이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문 이사장은 이같은 협력에 미국·중국의 견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서 “중견국들과 협력은 우선은 미국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협력이 미국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중국의 견제에 대해서는 “시진핑 주석은 2015년부터 이미 다자안보협력과 지역 경제공동체 구상을 제시한바 있다”며 “미국의 참여만 있다면 중국은 동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