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성공 조건…비용↓·기회↑[생생확대경]

가사관리사가 숙식 및 출퇴근 교통비 등 직접 내야
필수 비용 제외시 실제 수익 月100만원 안팎 예상
8시간 月238만원 가격 부담에 신청은 '강남권' 집중
숙식 제공시 비용↓, 근무시간·범위 등 유연성 필요
  • 등록 2024-08-20 오전 5:00:00

    수정 2024-08-20 오전 5:00:00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돈 많이 모으고 필리핀에서 사업하고 싶다. 가족도 많이 도와주고 대학도 다시 다니고 싶다.”

‘외국인(필리핀) 가사관리사’에 선발돼 지난 6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글로리(32)씨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에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이같이 밝혔다. 한국에선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9860원)과 4대 사회보험 등이 적용돼 홍콩·싱가포르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단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서울시가 다음달 3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홍콩·싱가포르 등에서 일할 경우 임금이 월 60만~8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이에 비해 서울에선 종일제(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는 206만원, 최소 보장 업무시간(주 30시간)기준 155만원 가량 받을 수 있다.

(자료=서울시)
액수만 놓고 보면 홍콩·싱가포르보다 2~3배 이상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사관리사들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일하는 가정에서 상주하며 숙식을 모두 해결하는 홍콩·싱가포르와 달리 출·퇴근제로 운영되는 우리 시범사업은 숙식·교통비 등을 가사관리사들이 자비로 부담하기 때문이다.

출·퇴근시 교통비로 6만원 안팎이 들고 숙박비(월 45만원 수준)와 하루 세끼 식사 등을 더하면 한 달에 최소 60만~70만원 지출이 예상된다. 종일제로 근무하면 필수 지출을 제외하고도 100만원 이상을 손에 쥘 수 있지만, 종일제 선택 비율은 전체 40% 정도에 그쳤다. 이에 주 30시간 정도를 근무할 상당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필수 지출을 빼면 홍콩·싱가포르에서 받는 급여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야간 근무 등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적다.

선정 가정 입장에서도 주 이용층인 맞벌이가정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단 지적이 나온다. 시범사업 선정가정 중 95.5%(150가정)에 달하는 맞벌이가정은 출근과 함께 아이들은 어린이집 등에 맡기고 퇴근길에 데려오는 육아 형태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시간대는 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 2~4시부터 부모가 퇴근해 집에 오는 오후 6~8시 사이, 육아 공백이 생기는 4시간 정도다. 8시간 종일제 근무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가사관리사가 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에 다른 집안일을 추가로 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에선 가사관리사에게 육아와 연관되지 않는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 등 일상적인 가사 업무를 시킬 수 없다. 그런데도 8시간 종일제 이용 가정은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572만 9913원)의 40%가 넘는 238만원을 매달 내야 한다. 고소득층이 아니면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신청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범사업 신청가정의 절반이 소위 ‘강남4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에 집중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서비스 이용 비용은 낮추고 가사관리사들이 일할 기회는 확대해 수익은 보장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적용하더라도 숙식을 제공하면 월 100만원 수준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등 선택지도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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