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미국과 캐나다 간 통상 갈등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원색적인 ‘말 폭탄’ 비난 공세로 번지자, 마이크 폼페이오
(사진) 미국 국무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11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관계에는 항상 자극이 있기 마련이다. 우방국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단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우방 중의 우방으로 불렸던 미국과 캐나다의 사이는 왜 이렇게 멀어진 걸까. 발단은 전날(10일)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직후 트뤼도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이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과 관련, “동맹국에 안보 위협을 이유로 관세를 매긴 것은 모욕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행(行) 전용기 안에서 ‘관세 장벽을 줄여나가겠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승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이튿날 백악관 관리들이 트뤼도 총리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불거졌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N에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자리를 뜨자마자 공격했다. 우리의 등에다 칼을 꽂은 것”이라고 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도 폭스뉴스에 “지옥에는 등 뒤에서 칼을 꽂으려는 외국 지도자를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다”고 했다. 수출의 78%를 미국에 의존하는 캐나다는 미국처럼 노골적인 대응은 삼갔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양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은 “캐나다는 동맹국에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관세부과가 “불법적이고 모욕적”이라는 입장은 재확인했다. 전 주미 캐나다 대사를 지낸 프랭크 매케나는 “경멸적 발언을 일삼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영국 BBC방송은 “총칼만 안든 ‘말 전쟁(war of words)’이 폭발했다”고 묘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양국 관계에 대해 “1812년 미·영 전쟁 발발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썼다.
양국 간 갈등은 이미 예견됐었다. 양 정상은 지난달 25일 무역갈등을 잠재우고자 전화통화를 했으나,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켰던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에게 1812년 미·영 전쟁을 언급, “당신들이 백악관을 불태우지 않았느냐”고 발언했다. 관세부과 이유로 ‘국가 안보’를 제시한 데 대한 트뤼도 총리의 항의에 농담조로 맞받아친 것이었지만, 양국 간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사실 관계도 틀렸다. 당시 백악관에 불을 놓은 주체는 캐나다가 아닌 영국군이었다. 캐나다는 존재하지도 않을 때였다. 일각에선 양국 간 갈등이 현재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