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는 한국경제 구조적 문제..YS정부 재평가 움직임

  • 등록 2015-11-23 오후 4:29:48

    수정 2015-11-23 오후 4:29:48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김상윤 기자]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다. 문민정부를 출범시키며 군사정권 시절의 적폐를 개혁한 정치·사회적 성과와 선진국 진입의 발판을 마련한 경제적 업적은 회자되지 않는다. 집권 5년차 끝자락인 1997년 11월에 발생한 외환위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줄도산과 이로 인한 실직은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한국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된 궁극적 책임은 당시 국정 최고 책임자였던 김 전 대통령에게 있다. 김 전 대통령도 생전에 외환위기는 자신만의 책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어느 정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외환위기 때문에 그의 모든 업적을 폄훼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의 공과 과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경제 구조상 언젠간 터졌을 일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세계화’를 내걸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금융자율화와 시장개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지방투자금융회사를 종합금융회사로 전환하고, 종금사에 외국환업무 취급인가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외환제도 개혁을 통해 외환 관력 각종 규제도 과감하게 풀었다. 이러한 정책은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1997년 11월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앞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차례로 겪은 것을 고려하면 반드시 OECD 가입이 위기를 촉발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당시 한국 경제의 구조를 꼽는다. 김 전 대통령의 정책이 위기를 앞당겼을 수는 있지만,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3일 “1990년대 초반과 지금은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며 “당시 기업부실 처리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금융실명제 도입 처럼 과감하게 밀고 나가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OECD 가입을 내세웠지만, 내부는 썩어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이 구조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것은 한국 경제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집권 기간 고도 성장을 이끈 경제 참모들의 보고를 지나치게 신뢰한 탓에 위기에 적기 대응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문민정부 최장수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여러 사람이 한국 경제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를 했는데도 어떤 영문인지 대통령께서는 늘 ‘연착륙’을 했다는 식의 보고를 받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2년 7개월 간의) 청와대 근무를 하다가 내각으로 나간 게 (1997년) 8월 초인데, 그 직전까지도 김 대통령은 한국 경제가 순탄하게 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으셨다”고 밝혔다.

새로운 경제 발전의 기틀 마련

김 전 대통령의 경제 성과 대부분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빛이 바랬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통해 정경유착을 끊고 비리와 편법을 잘라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입을 모은다.

1990년대 중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하며 김영삼 정부를 감시했던 이필상 고려대 명예교수는 “김 전 대통령은 과감한 개혁을 통한 비리 구조 청산측면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해서 경제체질을 강화했어야 하는 시점었지만, 기본골격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 과정에서 외환자율화 정책 등은 우리 경제의 거품만 키웠고, 결국 외환위기를 잉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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